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5년 9월 5일(금) ~ 9월 11일(목) A10 브베는 제네바와 몽트뢰 사이에 위치하며 세계문화유산 으로지정된라보포도밭으로향하는길목이기도하다. 라 보의계단식포도밭은수세기에걸쳐사람과자연이빚어 낸풍경으로호수와산, 인간의노동이어우러진예술작품 같다. 브베는그관문으로, 단정하면서도매혹적인첫인상 을안긴다. 처음이도시에들어섰을때, 곧깨달았다. 이곳 은단순한휴양지가아니라와인과예술, 그리고인류의미 래가교차하는무대라는것을…. 도심에들어서자조용히숨쉬는골목길과화분마다만발 한꽃이반긴다. 오래된건물의발코니에는제라늄이붉게 피어있었고, 그아래에는작은카페들이호수의햇살을흘 려보내듯문을열어두고있다. 차를세우고주차기를찾으니뜻밖의난관이기다리고있 었다. 기계는지폐를거부하고오직동전만삼킨다. 주머니 를 뒤져 보았지만 바스락거리는 종이돈뿐. 낯선 여행자의 발걸음을시험하듯,이작은도시가내민첫관문같았다. 주위를두리번거리다근처가게로들어가사정을설명한 다. 다소무심한듯한상점주인은미소를지으며몇개의 묵직한동전을내줬다. 차갑게반짝이는금속을손에쥐었 을때, 그것은단순한화폐가아니었다. 마치도시가나에게 건네준첫번째열쇠처럼느껴진다. 다시기계앞에서서동 전을넣고주차권을뽑아들으니여행의문이‘찰칵’하고 열리는듯하다. 브베 호숫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이 도시가 가진 정체 성이서서히드러난다. 단순한풍경을넘어인간과음식, 그 리고환경을이야기하는무대다. 그중심에자리한것이바 로‘알리망타시옹(식품) 박물관’이다. 박물관앞호수에는 하나의상징적인작품이서있다. 거대한포크조각. 은빛의 날이호수를찌르듯서있는모습이보는이의시선을단번 에사로잡는다. 마치거대한연회장의식탁에앉은듯한묘 한감각을불러일으킨다. 이박물관이왜이곳에있을까? 이곳에는세계적인식품 기업네슬레본사가있단다. 19세기후반창업자앙리네슬 레가유아용분유를발명하며작은실험을시작했을때, 아 무도 브베가 세계 식품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하리라 상상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인류가 무엇을 먹 고어떻게살아가는가를질문하는도시가됐다. 그런연유 로 브베는 단순한 호반 도시가 아니라‘식탁의 수도’라는 별명을얻게됐다고한다. 박물관 앞 산책로에는 음식과 환경을 주제로 한 사진 전 시가이어지고있다. 풍요로운곡물창고의내부, 파도위에 떠다니는플라스틱쓰레기, 그리고미래농업의실험적풍 경들. 호수와알프스산맥의장엄한배경속에서마주하는 이미지들이 단순한 감상을 넘어 마음을 두드린다. 호수의 반짝임 속에 비친 사진들이 묻는 듯하다.“우리는 무엇을 먹고있으며, 그것이지구와인류의내일에어떤흔적을남 기고있는가.” 그순간산책은단순한여가가아니라한권의무거운책 장을넘기는듯한시간이됐다.무거운마음을뒤로하고산 책로를따라조금더걸으니사람들의웃음소리가들려온 다. 호수앞광장에는찰리채플린동상이서있었다. 아이 들은동상의모자를만지며까르르웃었고여행자들은채 플린특유의익살스러운표정을따라하며사진을찍는다. 그 순간 광장은 작은 영화 세트장으로 변했고 호수는 스 크린처럼빛났다. 채플린이생의마지막을보낸저택을방 문해‘채플린월드’박물관을구경하지못한아쉬움이있 지만, 한세기를웃음으로물들였던그의흔적이여전히이 도시에남아있음을느낀다. 산책로끝자락나무데크위에는저마다의시간이흐르고 있다. 어떤이는책장을넘기며햇살을즐겼고, 또다른이 는호수에발을담근채눈을감았다. 벤치에나란히앉아 호수를 바라보는 노부부의 모습이 여행자의 시간을 일깨 워준다. 브베는크지않은도시다. 그러나문화적풍요가함께깃 들어있다. 작은동전하나로시작한여행이결국도시전체 가던져주는거대한이야기로이어졌다. 호수와산이맞닿 은이곳에서풍경의감상을넘어삶과예술, 인간의내일을 함께사색한다. ●박윤정(주)민트투어대표 프랑스에서 대학 생활 을하며유럽여행문화 를익혔다. 귀국후스스 로를 위한 여행을 즐기 겠다는 마음으로 2002 년 민트투어 여행사를 차렸다. 20여년동안맞 춤 여행으로 여행객들 의 취향에 맞는 여행을 디자인하고있다. 2021년 4월여행책‘나도한번은트레킹페스티벌크루즈’와이듬해 6월‘나도한번은발트3국발칸반도’를쓰고냈다. 스위스 ‘브베’의작은도시풍경속으로 브베산책로풍경. 알리망타시옹박물관전경. 8월의알프스햇살은여전히한여름기운을머금고있다.렌터카를몰고레만호수를따 라이어진길을달린다.도로옆으로는청록빛호수가잔잔히반짝이고멀리보이는설산 자락은여름에도은빛눈을품고있다.물과산이교차하는풍경을달려마침내목적지에 도착한다.크지않지만묘하게깊은울림을주는곳,바로‘브베’(Veve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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