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5년 9월 27일 (토요일) 오피니언 A8 1882년 9월 25일 일본 땅에서 태극기가 처음으로 게양됐다. 고 종이 특명전권대사 겸 수신사로 임명한 21세의 청년 박영효가 일 본으로 향하는 메이지마루(明治 丸)호선상에서그린바로그깃발 이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깃발이 최 초인줄알았다. 하지만최근에역 관 이응준이 최초의 태극기 제작 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박영효 의일본방문몇달전에수호통상 조약체결을앞두고미국의전권대 사 로버트 슈펠트가 조선 대표에 게 조인식에서 사용할 국기 제정 을 요청했고 이에 따라 김홍집이 이응준에게 국기 제작을 명했다 는 것이다. 태극과 4괘 문양을 갖 춘그의태극기는122년이지나서 야미국해군부항해국이발간한‘ 해상국가들의깃발’속에서발견 됐다. 이로써박영효의태극기는‘ 최초’의지위를잃게됐다. 하지만 그가 만든 태극기가 해외에서 최 초로 게양된 우리 국기라는 사실 에는 변함이 없다. 이응준의 것과 비교할 때 박영효의 태극기는 괘 의좌우가바뀌었다. 바로이수정본이 1883년 3월 6 일에 조선의 국기로 공식 선포됐 다. 1949년10월15일대한민국의 국기로공식제정되기전까지상징 으로서태극기에는수많은기억과 이야기가 쌓였다. 북한에서도 인 공기가등장하기전까지는태극기 가국기였다. 태극기의의미는시기와사용집 단에따라달라졌다. 6·25전쟁때 는 반공주의자임을 입증하는 증 명서로 사용됐고 1987년 6월 민 주화항쟁때아스팔트위에등장 한대형태극기는시민공화주의의 상징이었다. 2002년 월드컵 경기 박영효의 태극기 일본 땅에 펄럭이다 역사 속 하루 최호근 /고려대사학과교수 책상 정리를 하다가 사진 한 장이 책갈피에서 포르르 떨어진다. 까마 득한옛사진이다.여고동창둘이독 일에서 만난 사진을 보내준 것이다. 셋이서 곧잘 어울렸는데 나는 한국 에남고둘은각자유학을떠난것인 데독일에서만났단다. 시간이빠져나간흔적이사진속에 남아있다. 인화된사각종이가세월 만큼낡아보인다. 그시절이담겨있 는여고앨범을꺼내본다. 이름이 아물아물한 친구, 이름만 겨우 남겨놓고 기억에서 지워진 동 창들, 함께한시간들이성큼곁으로 다가온듯지난세월모퉁이를방금 돌아나온듯해맑게웃고있는친구 도만난다.가슴에빈방이여럿있었 나보다. 다 불러 모아 함께 지내고 싶어 진 다. 파도가밀려드는해변흰모래사 장이배경이된사진도있다. 조금은 촌스러운차림같은데제딴에는세 상없이멋지게차려입고학교건물 을배경으로폼부리고찍은사진도 있다. 흑백사진을모아둔상자도열 어옛시간을들추어본다. 이런저런결혼식사진속엔몇십 년을 만나지 못한 친척들을 만나기 도 하고, 색이 바랜 사진 속에서 세 상을떠나신이들도만나게된다. 사 진을한참들여다보고있다문득이 가을이다하기전에노란들국화곁 에선은발의할머니사진을앨범속 에갖추고싶어진다. 어린 시절, 사진 찍는 순간이 어색 해서 울고 싶었지만 겨우 웃고 찍은 사진은아직웃음을띠고있다. 화단 앞에서 찍은 사진 속, 꽃은 아직 한 번도시들거나낙화한적이없다. 푸 른잎은더이상낙엽으로지지않는 다. 이따금씩떠올리고싶지않은생각 을피하고싶을때, 잡다하게거슬리 는생각들이밀려들때면가족앨범 을펴보곤한다. 사진에집중되지않 는마음을붙들어앉혀놓고자문해 본다. 도피로서의 앨범 열기는 정신 건강에좋은가나쁜가. 복잡하게따 지고들면손쉬운답을얻을수있는 물음이아닐수도있겠지만내정답 은무조건좋다쪽이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생각, 나를 어 둡게만드는생각은우선피하고보 는게옳다는견해로밀어붙인다.우 선 거리를 두다 보면 강력하게 밀려 들던그무언가도일단락힘이줄어 든다. 최면걸리듯사진속으로빠져 들다보면어느새시작이반이되고 앨범 속으로 마음이 비집고 들어가 있곤했었다. 옛사진에전도된심미 안적후일담이다.사진의힘일게다. 사진은 빛으로 빚는 예술이다. 빛 과시간을통해존재의본질을탐구 하고, 삶의순간을영원으로확장하 려는시도라할수있겠다. 현실의끝 이자 상상의 시작으로, 기록의 도구 이자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예술이 다. 사진의어원은물체의형상을감 광막 위에 나타나도록 빛을 이용해 만든 영상 즉‘빛(photo)과 그리다’ (graph) 합성어로 빛을 그리다는 의 미를지니고있다. 렌즈가부착된전화기를만나고부 터는 어설픈 사진작가 노릇을 해오 고있다. 무료하거나할일이없어심 심해서가아니라오다가다진풍경을 만나게되면자동발생적으로카메 라에담게된다.다방면으로각을잡 느라 부산을 피우지만 아직은 신통 치않다. 사진프레임속에들어오는풍경들 이방금찍은것인데지난날을떠올 리게하는풍경을만난적도적지않 다. 사진을찍으며만나지는옛그림 자는 그저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과 거와는 사뭇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 다. 더깊고생생하게눈앞에선명히 그려지곤한다. 연상작용까지더해 지면마치그옛날로돌아간듯주변 의 소음까지 생생하게 들리는 환영 같은영상이펼쳐지곤한다. 완전득 템이다. 사진의힘으로믿어주고싶 다. 가끔 자신을 스스로 터부시 하게 되는일을만날때가있다. 자신이아 무것도아닌것처럼느껴지려할때 면유년시절사진을꺼내보며그순 간으로돌아가보곤한다. 잠깐의찰 나속으로들어가잠시나마스스로 를빛난존재로인정받고싶음을감 출수없음이라서 뜬금없는발광체가되어보곤한다. 볼품 없는 자신을 돌아보며 자연스 럽게불어오는바람결에실리듯힘 든시간을가볍게넘어설때도있다. 사진의힘으로받아들이고싶다. 우리 집 거실 벽에는 이십 여년 전 에 마련한 대형 가족사진이 자리잡 고있다. 순간으로멈춰버린아득한시간이 고여 있다. 더 나이 들지 않은, 맑고 선한 생애의 숨결이 고스란히 고여 있다. 해가담겨있고, 달과별이담겨 있고,우주가깃들어있다.창밖으로 하루를다한노을잔상이잔잔한파 문을일으키며밀려들어와사진속 의 예술 혼을 촉발시키듯 빈 둥지를 충만하게채워주고있다. 흔치 않은 찰나의 묘미에 젖어들 수 있는 것도 사진의 힘으로 인정해 주려한다. 김정자 시인·수필가 행복한아침 사진의 힘 사람의 멋이란 무엇일까, 화려 한옷차림이나유려한말솜씨가 아니라, 세월 속에서 조용히 다 져진내면의향기일것이다.젊었 을 때는 외모는 물론 대화와 행 동에서느껴지는지성의깊이와 이해심의폭을갖춘인격자가참 멋있다고느껴졌다. 살아오면서 젊음의 속도감과 중년의 무게감, 또 노년의 여유 등 나이마다 다르게 빛나는 삶 의 결을 비교하면서“지나온 세 월이 주는 멋”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으며,나의안목도넓어지고 참멋의정의도성숙하게익혀졌 다. 공자가 말한 지천명(知天命)은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에 이르 면 사람은 비로소 세상의 멋을 안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 이다. 삶의멋이란한존재가가진시 간과 흔적을 존중하고, 그 깊이 를느끼는것이기때문이다. “사람이온다는건 / 실은어마 어마한일이다. / 그는그의과거 와 / 현재와 / 그리고 / 그의미래 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사 람의일생이오기때문이다. / 부 서지기쉬운, 그래서부서지기도 했을마음이오는것이다. /그갈 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보고 / 햇빛은 번져와서 / 키워준 것일 마음이 오는 것이다......정현종 의“방문객” 인생은 모든 아름다움과 고통 이 어우러진 긴 여정이다. 고비 마다 남겨진 흔적들, 상처, 기다 림,기쁨과눈물,그속에삶의선 율이 스며있어서 삶의 고비를 다각적으로경험하게된다.삶에 대한이해심으로인간성이더깊 고넓게성숙하게된사람, 그러 한인격체가순탄한삶에서저절 로 나오지 않음을 오랜 경험으 로알수있다. BC400경의 서양철학의 비조 인플라톤이주장하는5가지행 복은“생활하기에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 칭찬하기에 약간 부 족한 용모, 자신의 자만에 비해 부족한 듯한 명예, 중간정조의 체력, 자신의 연설을 듣고서 청 중의 절반은 손뼉을 치지 않는 말솜씨”라는것이다. 공즉생(空卽生)의철학적의미 의삶은아니라도조금은비어서 채울 수 있는 여백이 있는, 뒤로 물러나도후회되지않는,조금은 여유 있고 반쯤 후회되는, 완벽 하지 않고 조금 부족한 그런 삶 이 플라톤이 지양하는 행복의 조건이라니조금안심되는요즘 우리들의가슴이다. 인생철학자 쇼펜하우어는“정 신적 욕구를 가지지 못한 인간 을속물이다”고했다.이말은외 향적인멋만을간절히추구하며 내재적인미에관심이적은사람 을뜻한다. 그러나이구절도현 대불확실한시대엔고전이되고 말았다. 신자본주의 사회는 외모지상 주의가 되었으며, 결혼, 취직시 험 등 경쟁을 뚫기 위해서는 미 용, 다이어트, 성형수술은 일종 의인생투자가되고만것이다.명 동을 걸어가는 처녀들이 다 비 슷한 얼굴판에 오뚝한 코와 커 다란 눈을 해서 자기 딸을 찾기 가어렵다는조크도있다. 그러나 시대를 초월해서 멋있 는 삶이란, 자기 일에 최선을 다 하는 사람으로 인류를 위해 더 좋은 세상이 되게 노력하는 사 람이며, 일회성의인생에서생의 가치와의의를인식하고후회없 는삶을가꾸어가는사람즉멋 있는 사람이 의미 있는 삶을 영 위할것이다. 김인자 시인·수필가 토요단상 멋있는삶 장 관중석을 뒤덮은 초대형 태극 기는 정치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 인의미를거의담지않았다. 얼마 전 탄핵 반대 집회에 등장 한 태극기가 탄핵 찬성 진영의 대 형태극기는서로다른방향을가 리켰다. 우리 시대의 태극기야말 로 기표는 같아도 기의는 얼마든 지다를수있다는언어학자페르 디낭 드 소쉬르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사례일까. 우리 민족의 근대 적 기억을 담아온 태극기가 통합 의상징이될때를기다린다.
Made with FlippingBook
RkJQdWJsaXNoZXIy NjIxM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