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5년 10월 16일 (목요일) 지난주에 빌린 책을 반납할 겸 도서관에 가서 오후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다. 굵은 빗줄기를 뚫고 도착한 도서관 서가에서 책을 뽑 아자리에앉고나서야알았다. 안 경을챙겨오지않았다는걸. 안경 없이 장시간 책을 보는 건 무리였다. 정기간행물실에서대여 섯종의신문을일람한뒤밖으로 나왔다. 그사이햇살이쨍하게내리고있 었다. 쾌청하게 부는 바람에서 진 한 솔향이 풍겼다. 둘레길 산책을 하려고길모퉁이를돌던때였다. “여기, 1453년10월10일에일어 난 계유정난이 바로 그 사건이야. 수양대군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왕위를빼앗은.”작은공터원탁에 아이셋이앉아있었다. 테이블에놓인책중하나에‘초 등 5학년 한국사’라는 제목이 적 혀 있었다.“그니까 단종이 우리 나이였다는거잖아. 어떻게 삼촌이 조카한테 그러 냐? 권력에미쳐서완전히돌아버 린 거지.”이야기를 주도하던 아 이가 쿡쿡 웃다가 다시 입을 열었 다.“얼마 전에 TV에서 진짜 소름 돋는 말을 들었거든. 권력은 자기 아들과도 나눌 수 없는 거래. 근 데 1453년에는 유럽에서도 두 가 지중요한일이일어나. 왕위를놓 고잉글랜드랑프랑스가100년넘 게 치고받고 했던 백년전쟁이 끝 나고, 또동로마제국이멸망하는 데….” 사회심리학자 쿠르트 레빈이 만 든‘러닝 피라미드(학습 피라미 드)’가떠올랐다. 공부법에따른학습정착률을피 라미드 형태로 그린 그림이다. 레 빈에 따르면 우리 두뇌에 가장 잘 기억되는공부법은바로‘서로가 르치기(정착률 90%)’라고 한다. 그뒤를잇는것이복습(75%)과그 룹 토론(50%). 참고로 혼자 교재 를읽는것(10%)만도못한최하위 학습법이 우리가 학창 시절 내내 지겹게반복해온그것,‘수업듣기 (5%)’다. 그러니까이아이들은지금효율 성최상인‘가르치기’와‘토론’을 시연하는 중이었다. 근처 벤치에 슬그머니앉았다. 내게도그런경험이있었다. 초등 학교3학년2학기때옆동네사는 친구엄마가부탁을해왔다. 학년말까지만친구공부를도와 줬으면 좋겠다고. 그이가 보기에 나는좀상냥한아이였던것같다. 이후매주세번친구집에가서같 이 숙제하고 예습·복습을 했다. 석달이지나고쑥올라간성적표 를 받아 든 친구 엄마는 500원짜 리지폐여섯장이든봉투와사과 궤짝을 들고 우리 집으로 오셨다. ‘선대(先代)의 기억’이니‘우정’ 이니 들먹이며 엄마가 손사래를 치는바람에그빳빳한지폐를나 는 만져보지도 못했다. 크게 아쉬 울것도없었다. 내성적역시뜀틀 넘듯도약했으니까. “내가왕이될상인가?” 20분넘 게역사토론을이어가던아이들이 일어서면서 까르르, 웃고 까불었 다. 안경을챙기지않은탓에오늘도 서관행은 헛걸음이구나 싶었는 데… 독서보다 상큼한 행복감에 취한 나는 주택가로 달려가는 아 이들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홀린 듯바라보았다. www.HiGoodDay.com ‘GreatGame’.한국어로따로번역 된말을찾기어렵다.그래서보통그냥 ‘그레이트 게임’으로 통용된다. 다소 클래식하게 들리는 이 정치외교 용어 가요즘새삼스레소환되고있다. 1900년 미국 해군의 제독이자 전략 지리학자인 알프레드 머핸은 일련의 논문들을모아한권의책을냈다.‘아 시아의문제(TheProblemof Asia)’가 그책의제목이다. 러시아가 새로운 파워로 부상했다. 이와 맞물려 동아시아에서 중앙아시 아를거쳐중동에이르는광대한지역 이불안정성가중과함께혼란의소용 돌이에빠져들고있다. 그상황들을열 거하면서 머핸은‘아시아의 문제’의 원흉으로러시아를지목했다. 러시아세의팽창과함께불안정한상 황에 봉착한 지역을 구체적으로 밝히 면일본, 한반도, 중국본토, 대만, 남중 국해, 인도, 파키스탄, 벵골만, 아프가 니스탄, 아라비아 해, 페르시아 만, 이 란, 석유자원이 풍부한 카스피 해 분 지, 오늘날의 튀르키예, 홍해, 레반트 해, 동지중해를망라한북위30도에서 40도사이에걸쳐있는광대한아시아 벨트전체가망라돼있다. 19세기 말 머핸이 활동하던 시기에 영국과 러시아제국은 이 아시아 벨트 를놓고거대한지정학적싸움에몰입 해있었다.부동항을확보를목표로러 시아는남진정책펴고있었다. 반면영 국은 인도지배 유지를 목표로 러시아 의남진을저지하는전략을펼치고있 었던것. 그두세력은결국충돌한다. 크림전 쟁(1853~58)이 그 하나다. 이후 전선 은 중앙아시아를 넘어 멀리 극동지역 으로까지확산됐다. 1885년영국해군 의 거문도점령도 그 일환으로 조선침 탈보다는 러시아남진 저지가 목표였 다. 그러니까 1830년무렵부터 1차세 계대전 전 까지 영국과 러시아가 유라 시아패권을놓고벌인이지정학적충 돌이바로‘GreatGame’이다. 한세기도훨씬전에머핸이‘아시아 의문제’에서지적한지역들이그런데 그렇다. 시진핑의 중국이 2013년부터 중화제국의 야망을 펼치기 위해 제시 한 일대일로(一?一路)정책, 다시 말해 경제력을 지렛대로 지정학적 야망을 충족시키려는 중국의 해외거점 확산 기도정책,그전략지도에이지역들이 모두포함돼있다.무엇을말하나. 19세 기‘아시아의 문제’의 원흉이 러시아 였다면오늘날에는중국이란얘기다. 첫 번째 Old Great Game이 영국과 러시아의 다툼이었다면 오늘날 전 지 구적으로펼쳐지고있는두번째New Great Game은미국과중국의지정학 적 싸움이란 것이 프로비던스 저널의 지적이다. 중국의목표는다른데있지 않다.‘세기의 치욕(1839~1949 - 아 편전쟁에서 중국공산당 정부수립 전 까지의 기간 동안 열강으로부터 받은 수모)’의설원(雪?)이다. 중화인민공화 국건립 100주년이되는오는 2049년 까지중국이수퍼파워로등극해세계 를지배하는것이궁극적목표다.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도 다름이 아니다.‘백년의 마라톤’저자 마이클 필스버리에 따르면 팍스 아메리카나 를 뛰어넘어, 천자(天子) 나라의 영광 을재현한다는것으로같은맥락이다. 머핸 시대에 러시아는 노쇠해 숨을 헐떡이는중국을놓고서방열강과다 투었다. 오늘날에는 중국이 러시아와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맺고 유라시아 지역의 지정학적 다원주의 교란 위협 을가하고있다는것이프로비던스저 널의지적이다. ‘유라시아 전역은 물론,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지역까지 전선이 확대 된오늘날의경쟁은대륙세력(Conti- nental Power)과 해양세력(Maritime Power)간의갈등의반복,그최근버전 이다.’ ‘New Great Game’에대한포 린어페어스의진단이다. 2차세계대전이후미국의전략은전 형적인 해양세력의 입장을 대변해왔 다. 개방적이고 민주가치를 지향하는 가운데해상무역과상업을 통한공동 의경제적번영추구가그기본구조다. 이 같은 경제적 이해와 가치관이 반 영돼 미국을 비롯한 서방 해양세력 의합의에따라조성된전후국제질서 가바로‘규칙에기반한질서(Rules- BasedOrder)’다. 폐쇄적이고독재적성향이다. 약탈적 영토 확장이 국가전략의 핵심을 이룬 다.대륙세력의특성으로중국,러시아, 이란, 북한 등 대륙세력이 블록을 결 성해이‘규칙에기반한질서’파괴에 나선 것으로 포린 어페어스는‘New Great Game’의 경쟁의 양태를 설명 하고있다. 왜‘규칙에 기반 한 질서’파괴에 그 토록 안달인가.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그 존재 자체로 유라시아대륙 독재국 가들에게실존적위협이되고있기때 문이다. Old Great Game은반세기이상전개 됐다. New Great Game은 단순한 대 륙세력과 해양세력 간의 갈등 범주를 넘어섰다. 공중 파워, 우주 파워, 사이 버 파워, 인공지능(AI)파워의 경쟁도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어서다. 이것이 의미하는것은그경쟁은더장기화될 수있고그만큼더위험해졌다는거다. 여기에서시선은한반도로쏠린다.대 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교차점이다. 그 리고‘전체주의 축’과 민주주의 세력 이부딪히는최전선이다. 이같은입지 조건의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한국의 정국이이재명이후이상한흐름의결 을드러내고있어서다. 위험천만한 이 New Great Game에 서 대한민국은 서방, 해양세력의 일원 으로존속하면서계속문명의꽃을피 워나갈수있을까.아니면….뭔가불안 한방향을향해가고있는느낌이다. <논설위원> 오피니언 A8 서정주 국화옆에서 ‘죽음의 상인’ 과 ‘평화의 후원자’ 옥세철의 인사이드 한송이의국화꽃을피우기위해 봄부터소쩍새는 그렇게울었나보다 한송이의국화꽃을피우기위해 천둥은먹구름속에서 또그렇게울었나보다 그립고아쉬움에가슴조이던 머언먼젊음의뒤안길에서 인제는돌아와거울앞에선 내누님같이생긴꽃이여 노오란네꽃잎이필라고 간밤엔무서리가저리내리고 내게는잠도오지않았나보다 ◆서정주시인약력 ▲1915년 전북 고창 출생, 2000년 타계 ▲ 1936년동아일보신춘문예로등단▲동국대학 교 교수 역임 ▲‘화사집’‘귀촉도’‘동천’‘질마재 신화’‘떠돌이의시’등시집15권. 오늘의 시 박경자 전숙명여대미주총회장 지평님 황소자리출판사대표 삶과문화 가을, 도서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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