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5년 11월 7일(금) ~ 11월 13일(목) A10 2024년 1월 새해 첫날의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북륙의 겨울치고는 이례적으로 따뜻한 공기였다. 하얀 눈이 덮인 북륙의 들판 너머로 이시카와현의 바다가 잔잔히 보였다. 그날오후일정은뜨거운온천의김속에서시작될예정이 었지만예기치않은흔들림이먼저찾아왔다. 처음에는미 세한진동이었다. 방안의찻잔이소리없이떨리더니곧사 이렌이울렸다. 익숙하지 않은 일본어 방송 속에는 공포가 묻어 있었다. 지진이다. 바닥아래로느리게밀려오던땅의숨결은쉽게 멈추지않았다. 그몇분의시간이긴새벽처럼느리게흘러 갔다. 자연의힘앞에서인간의일상이얼마나덧없는가를 새삼깨달으며한밤을꼬박새웠다. 다음날고마쓰공항에 서비행기가이륙할때까지도그진동의기억은몸안어딘 가에남아있었다. 가나자와의겨울은여전히아름다웠다. 겐로쿠엔의소나 무에는눈을이기기위한새끼줄이별처럼얽혀있었고골 목마다하얀증기가피어올랐다. 그러나그해의지진과쓰 나미는이평화로운풍경을잠시앗아갔다. 가옥이무너지 고해안가의온천마을들은문을닫았다. 이후여행객의발 길은 끊어졌고 료칸들은‘재방문 프로모션’이라는 이름 으로희망을되살리려애썼다. 그리고2025년나는다시고마쓰공항에내렸다. 추석연 휴의북륙은생각보다따뜻했다. 낯익은공항에서렌터카 를몰아가가시로향하니논밭위로가을빛이비단결처럼 번졌다. 멀리‘하쿠산’의 능선에는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 고도중에들른‘야마시로온천’은마치기다렸다는듯여 행자를품어줬다. 료칸의주인은여전히같은미소로맞이했지만눈가에는 세월의흔적이조금더깊게새겨져있었다. 그들에게가장 큰위로는누군가가다시찾아오는일일것이다. 복구란단 순한관광의회복이아니라지역이다시숨쉬는생명력의 회복이아닐까. 가이세키로 저녁상을 맞이하고 가을 한정 사케‘히야오 로시’를추천받는다. 가가시는사케의고장으로도유명하 다. 겨울에빚은술을봄지나여름내내숙성시켰다가서늘 한바람이불기시작하는 9월에개봉한다. 긴숙성의시간 동안거칠던맛은부드러워지고향은깊어진다. 마치인간 의기억이상처를덮고나서야향기로변하듯. 붉게 물든 단풍을 바라보며 잔을 기울였다. 부드러운 쌀 향, 입안에 퍼지는 단정한 단맛. 지진의 흔적이 남은 땅 위 에서도,이계절의술은여전히자연의리듬을따라흘렀다. 히야오로시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계절과 인간이 화해 하는하나의의식이었다. 식탁위에는‘가가야채’로만든반찬들이정갈하게놓여 있다. 단호박, 연근, 우엉, 그리고생선회위에살짝올려진 금박. 그것은가나자와특유의섬세한미학이다. 이곳사람 들은‘아름다움’을 장식이 아니라 삶의 예의로 여기는 듯 하다. 식사후료칸뒤편숲으로이어진노천온천을찾는다. 돌 위로잎이떨어지고물위로피어오르는김은밤공기속에 아련히흩어졌다. 손끝으로물결을만지며생각한다. 2024 년과 2025년같은장소이지만세상은이렇게달라져있었 다. 지진은모든것을흔들었지만사람들은다시제자리로 돌아왔다. 무너진 담장은 새로 세워지고 닫혔던 료칸에는 다시불이켜졌다. 여행자는그부활의현장을목격하는조 용한증인이된다. 가을밤 하늘에는 달이 떠 있다. 추석의 보름달은 이국의 산위에서도둥글게피어난다. 각자의의미로달을바라보 겠지만나에게그달은회복과순환의상징이다. 여행은다 시시작된다는것을, 인간이자연과더불어살아가는가장 오래된방식이자가장아름다운인내라는것을달빛아래 에서깨닫는다. 이른아침마을은다시평온하다. 유카타차림의젊은여 행객들이 조용히 산책을 즐기고 카페에서는 동네 주민이 커피를주문한다. 그들의일상은여행같고여행은그들의 일상이됐다.시간은흘렀지만가가는여전히‘삶이이어지 는곳’이다. ●박윤정(주)민트투어대표 프랑스에서 대학 생활 을하며유럽여행문화 를익혔다. 귀국후스스 로를 위한 여행을 즐기 겠다는 마음으로 2002 년 민트투어 여행사를 차렸다. 20여년동안맞 춤 여행으로 여행객들 의 취향에 맞는 여행을 디자인하고있다. 2021년 4월여행책‘나도한번은트레킹페스티벌크루즈’와이듬해 6월‘나도한번은발트3국발칸반도’를쓰고냈다. 지진과쓰나미이후다시찾은일본‘가가시’ 이시가와현풍경. 가가시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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