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5년 11월 21일(금) ~ 11월 27일(목) A10 남산의 옛 이름은 목멱산. 조선시대 한양의 풍수적 중심 축위에위치해, 늘서울사람들의정신적원점으로존재해 왔다. 한때군사보호구역으로일반인의출입이엄격히통 제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오늘의 남산은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는 도시의 공공 정원으로 거듭났다. 11월 한 달 동 안진행되는‘2025남산둘레길가을소풍’에맞춰나들이 를나선다. 남산둘레길은사계절의표정을온전히담아내며산을에 워싸는데,여기에지난달25일새길하나가더해졌다.바로 ‘남산 하늘숲길’이다. 케이블카 주변과 북측 순환로를 잇 는이길이단풍으로물든모습은출근길에스쳐보던익숙 한남산과전혀다른도시의한장면을보여준다. 하늘숲길 이라는이름처럼, 나무위로드리운붉은단풍사이로하늘 이열리고,발아래로는서울의풍경이흐른다. 산책의출발점으로남산도서관을택했다. 숲길입구로향 하던발걸음을식욕이붙잡아, 요즘입소문이자자한도서 관 구내 식당에 들른다. 따뜻한 국 한 그릇과 정갈한 반찬 이놓인식탁앞에서, 오랜만에학생시절의기억이겹쳐졌 다. 책과지식의향이남은공간에서먹는식사는어쩐지마 음을단정하게한다. 점심을끝내고커피한잔을들고밖으로나선다. 종이컵 의온기가손바닥을데우며, 산책의첫발을부드럽게이끈 다. 하늘숲길에들어서는순간공기가달라진다. 머리위에 서낙엽이흩날리고, 목재데크아래로는서울도심이파노 라마로펼쳐진다. 천천히걸음을옮기다보면도시를벗어 나어느산사의고요속을걷는듯한착각마저든다. 길가 벤치와 야외 의자들엔 저마다의 가을 풍경이 놓여 있다. 운동복차림의사람들은신발끈을느슨히풀고의자 에등을기대어햇살을즐겼고, 연인들은낙엽냄새와커피 향에취해목소리를낮췄다. 유모차를미는어머니는아이 의시선을하늘로끌어올려노란잎의움직임을보여줬고, 백팩을멘학생들은사진을찍으며“이게정말서울맞아?” 라며감탄했다. 사람들은자연을소비하는것이아니라, 자 연의품속에서잃어버린자신을되찾고있는듯하다. 남산을걷다보면마음속에불필요하게웅성거리던말들 이조용히가라앉는다. 낙엽이땅에내려앉듯, 과한생각들 이고요히내려놓아진다.커피잔을손에쥔채천천히숲길 을걷는동안,‘지금내게필요한것은멀리떠나는여행이 아니라, 잠시 머무는 여백이었구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남산은멀리비행기를타지않아도, 그자체로여행이되는 장소다. 도시의속도에지친이들에게남산의가을은조용 히속삭인다.“잠시멈춰도괜찮다”고. 하산길은자연스럽게이태원방면으로이어졌다. 언덕을 내려오자 서울의 다문화적 향취가 진하게 묻어나는 골목 들이 맞이한다. 작은 갤러리에서는 지역 예술가들의 실험 적전시가열리고, 낡은건물속북카페에서는여러언어가 섞인대화가잔잔하게흐른다. 해가서쪽으로기울무렵, 각 국의향신료냄새가골목을채우며낯선도시를여행하는 듯한기분이피어오른다. 남산의고즈넉함에서이태원의활기로건너오는이동선 은서울이라는도시의다층적얼굴을가장압축적으로보 여준다. 서울에서 이보다 더 서울다운 여행이 또 있을까? 가을바람이남산자락을스칠때, 서울은잠시여행지가된 다.지금이바로,그길을걸을순간이다. ●박윤정(주)민트투어대표 프랑스에서 대학 생활 을하며유럽여행문화 를익혔다. 귀국후스스 로를 위한 여행을 즐기 겠다는 마음으로 2002 년 민트투어 여행사를 차렸다. 20여년동안맞 춤 여행으로 여행객들 의 취향에 맞는 여행을 디자인하고있다. 2021년4월여행책‘나도한번은트레킹페 스티벌크루즈’와이듬해6월‘나도한번은발트3국발칸반 도’를쓰고냈다. ‘남산하늘숲길’서서울가을거닐다 남산하늘숲길풍경. 남산도서관내부. 도시는가끔제속도에서비켜나잠시숨을고를공간을필요로한다.유리와콘크리트의수직적숲속에서살다보면,사람들은계절의 움직임을눈으로확인하고, 스스로의마음을가다듬을여백을갈망한다. 서울의심장부에우뚝선남산은, 그여백을가장‘서울다운 방식’으로품고있는곳이다.왕조의궁궐과현대의빌딩이공존하는도시의지층위에서,가을남산은붉고노란숲길을열어사람들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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