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5년 12월 4일 (목요일) 오피니언 A8 지난날 연기생활을 함께 했던 이순재 선배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접하고머나먼미국애틀 랜타에서살고있는나는고인의 명복이나 빌 뿐 어쩔 수가 없었 다. 지난 5월“코리언 아메리칸 아 리랑“에세이 출판관계로 한국 에갔을때각광을받던선후배 연기자들의 소식을 알아본 결과 거의다세상을떠나고없어인생 사머무나허망했는데또이순재 선배가세상을떠났다.누구나가 게 돼있고 막을 수도 잡을 수도 없는 인생여정이지만 한때 동고 동락을했던사람들이떠나고없 고있는것은너무나다르다. 국민배우이순재선배는2년연 상인데고인은일생을연극을위 해 몸 바쳐온 배우인 동시에 연 극, TV, 영화의공로가큰국민배 우다. 1950년대 말 살기가 힘들고 어 렵고미래가막막했던당시연극 에열정을쏟을때주위에서딴따 라취급을해도배우의길을고수 해왔던그시절함께활동했던나 와는소극장단체가달랐지만같 은배우의길을걸어왔던인연이 깊다. TV방송출연도함께해온선배 다. 고인은 훌륭한 연극인 인 동 시에 성공한 국민배우다. 선배가 마지막가시는길에명복을빌며 하늘나라에서도 못다한 연극을 계속하실수있게되기를기원한 다. 이순재선배는정의롭고모범적 이고 따듯하고 다정다감했던 분 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배우 들 중 술을 전혀 안 했고 골초에 가깝도록 애연가였는데 그것 역 시일찌감치끊은분이다.나와는 바둑적수라KBS-TV텔런트실 에서자주승부를가렸던사이라 더욱더옛날이그립고애통하다. 그런데도 장례식조차 참석치 못 한 체 추모의 글을 쓰게 된 것이 너무죄스럽다. 지난5월이순재선배와절친최 불암씨를 만나려고 하다가 건강 문제로가족들이면회를사절해 만나지 못하고 장충동 국립극장 분장실에서연극“고도를기다리 며”에출연중인박근형씨와신구 씨를만나재회의기쁨을나누다 가이순재선배에대해물으니다 리가 아파서 못 나올 뿐 크게 걱 정할일은아니라고했는데애통 하게도 머나먼 길을 떠나셨다니 옛날이 너무나 그립고 애통하고 허망하다. 누구나가는길앞차냐뒤차냐 그것이문제일뿐어차피내일일 을 모르며 살다 가는 것이 인생 사인 것을 어찌할꼬! 하지만 살 아있는사람들은가시는분들을 위해명복을빌면서다시만날날 을바랄수밖에없다. 여하간 이순재 선배는 훌륭한 삶을살아온분이고배우라는직 업을통해수많은사람들과사랑 을함께나누고누린훌륭한국민 배우다. 초창기 연극을 위해 함께 피눈 물나는역경을겪어온분이고또 험한 가시밭길을 헤쳐가며 최고 의 국민배우로 세상을 아름답게 빛낸분이다.나와같은낙오자와 는전혀다르게일생을배우의길 을걸어온위대한연극인이고초 지일관한우물을판고인의과거 사를 아로새기며 나이 90이 된 이순간먼저가신선배님의명복 을빌며알길없는또다른세상 에서찬란한연극이펼쳐지게되 기를간절히바란다. 삶과 생각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칼럼니스트) 고이순재원로국민배우 추억의 아름다운 시 박경자 전숙명여대미주총회장 향수 넓은벌동쪽끝으로 옛이야기지줄대는실개천이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황소가 해설피(해질무렵)금빛게으른울음을우는곳, ―그곳이차마꿈엔들잊힐리야. 질화로에재가식어지면 뷔인밭에밤바람소리말을달리고, 엷은졸음에겨운늙으신아버지가 짚벼개를돋아고이시는곳, ―그곳이차마꿈엔들잊힐리야. 흙에서자란내마음 파아란하늘빛이그리워 함부로쏜화살을찾으려 풀섶이슬에함추름휘적시던곳, ―그곳이차마꿈엔들잊힐리야. 전설바다에춤추는밤물결같은 검은귀밑머리날리는어린누이와 아무렇지도않고예쁠것도없는 사철발벗은아내가 따가운햇살을등에지고이삭줍던곳, ―그곳이차마꿈엔들잊힐리야. 하늘에는석근(여러모양의별들이섞여빛나는모습)별 알수도없는모래성으로발을옮기고, 서리까마귀우지짖고지나가는 초라한지붕, 흐릿한불빛에돌아앉아도란도란거리는곳, ―그곳이차마꿈엔들잊힐리야. 정지용시인 1902년 충북 옥천 출생, 서울 휘문고보,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졸 업, 유학 중이던 1926년 유학생 잡지 <학조> 통해 등단. 1929년 귀 국해 휘문고보에서 교편. 광복 후 이화여전 교수, 경향신문 편집국장 역임 1930년 박용철, 김영랑 등과 동인지 <시문학> 창간. 1933년 < 가톨릭 청년> 편집고문일 때 이상(李箱)을, 1939년 <문장> 편집위 원으로 청록파를 등단시킴. 1935년 첫 시집 <정지용시집> , 1945년 <백록담> 출간. 1950년 6ㆍ25전쟁 중 납북, 그해 9월25일 사망 “폭풍우치는데어쩔꺼여!그럴 땐 우산도 소용 없어. 그냥 지나 가길기다려야지. 얼른집가서뜨 끈한거먹고푹자. 그렇게하루 하루보내면돼!” 20년전쯤삶의첫암흑기를겪 었다. 남편이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사업을한다고밖으로 돌았다. 의지와는 별개로 되는 일은 없 었고, 생의 불안이 엄습했다. 게 다가아이는막초등학생, 8학군 에서아이를키운다는건전쟁같 은일이었는데... 너무 답답해서 동생이랑 점을 보러갔다.잠실에용하다는단재 할아버지였는데, 이제삼십대초 반인젊디젊은애엄마들을퍽안 스러운눈으로봐주셨다. 낡은 책을 펼치고 생년월일을 묻고볼펜으로한자들을막쓰시 더니, 사주 너무 좋다고, 관상도 너무 너무 좋다고, 아무리 좋아 도늘좋을순없다고, 그러니견 뎌야하는시절도있는거라고,조 금만버텨보라고,집가서맛있는 밥먹고푹자라고. 딱히 용한 건 모르겠지만 마치 우리 외할아버지처럼 다정하게 두런두런이야기해주셨다. 중년 이후는 복덕이 그득할거라고 사 주팔자를알아듣기쉽게풀어가 며 설명해 주셨는데, 그 시절 나 는당장오늘이괴로워죽겠는데 무슨중년이야,너무멀고아득했 다. 그렇게 생의 소나기에 흠뻑 젖 어도결국지나갔다. 쨍하고햇빛 빛나는가싶더니,잔뜩흐려눈도 쏟아지고, 다시개인하늘... 인생 이영락없이계절같았다. 설렘 기쁨 슬픔 고통이 날씨처 럼순환하고,좋다고붙잡아도오 래 머물지 않았고, 영영 안만났 음싶어도다시돌아왔다. 단재할아버지는점쟁이가아니 라순리의수호자였다. 이후일년쯤지나퍽밝아진마 음으로 다시 찾아갔는데... 그만 돌아가시고 안계셨다. 감사의 말 을 드리러 간터라 마음이 풀썩 주저앉았다. 인생이느리고힘겨 운 줄로만 알았는데, 어느새 시 간이 휙휙 흘러 중년이 됐다. 그 때단재할아버지말대로사주가 좋아서지금편하게산다고생각 진않는다. 아마도 그 할아버지는 찾아오 는모는힘든사람들에게그리얘 기해줬을것이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삶의 동앗 줄이 되기도 하니까. 할아버지. 예언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 니다. 가끔 소나기에 옴팡 젖어도 햇 살좋을때마음널어말리고저녁 엔 따뜻한 밥 먹고 잘 자면서요. 감사했습니다. 목요에세이 임지영 (주)즐거운 예감 한점 갤러리 대표 운명카운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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