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5년 12월 5일(금) ~ 12월 11일(목) A10 동해에서넘어온바람이산능선을쓸고태화강은고요한 곡선을그리며울산내륙깊숙이스며든다. 그한가운데서 말이전의언어와종이이전의기록, 문명이전의사유가돌 위에새겨져있었다. 이땅이품어온시간은우리가익숙하 게여겨온역사보다훨씬오래됐고훨씬더뜨거웠다. 올해여름‘대곡리반구대암각화와천전리명문및암각 화’가 세계 유산에 등재됐다. 고궁이나 사찰 같은 구조물 도아닌문명이전의인간이남긴사유의흔적이세계적가 치를인정받았다는사실은더특별하다. 반구천계곡에가 을이내려앉은날, 약 6000년에걸쳐이어져온암각전통 을만나기위해길을나선다. 여정의시작은울산암각화박물관이다. 세계유산등재를 기념하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실에 들어선 순간 오래된시간이고요한층위로쌓인듯한정적이공간을채 웠다.선사인이창을던지고도구를만들며강을오가는고 래 무리를 그리던 장면이 입체적인 상상력 속에서 되살아 난다. 그단순한선과기호들이보여주는것은사냥이나생 존의 기록만이 아니었다. 자연의 법칙을 관찰하고 이해한 감각,세계를해석하던지혜가그안에숨쉬고있었다. 특별전시실마지막에는반구대가수몰과노출을반복하 며 견뎌온 시간의 상처, 그 보존을 위해 수십 년간 이어진 연구와논의가영상과자료로지나갔다. 전시를나서며문 득,‘인류의 기록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미래에 이어야 하는가!’라는생각이길게남는다. 박물관을나와반구대로향하는길은물빛과바람, 능선 이 서로 호흡하는 풍경 속을 지난다. 강은 깊고 낮은 소리 를내면서흐르며갈대사이로스치는바람은오래된무언 가가말을걸어오는듯하다. 돌무더기가길의끝을알릴무 렵,반구대는마침내모습을드러낸다. 암각화판면앞에선순간돌은말이없지만, 그침묵은놀 라울만큼풍요롭다. 은빛으로흩어지는강물위로고래의 윤곽이떠오르고배위의사람들은창을높이치켜들고있 다. 삶의규칙, 기도, 자연에대한이해, 그모든것이단단한 돌위에작은선으로남아있었다. 세계유산이라는명칭보다먼저다가온감정은오래된사 유가수천년의시간을넘어마침내세계와닿았다는경이 로움이다. 그순간그연결의현장에잠시서있는작은증 인이된듯하다. 천전리로 가는 길은 반구대보다 더 조용하고 더 깊었다. 강의 흐름은 느릿해지고 숲의 호흡은 차분해진다. 천전리 각석은긴의식을마친후묵상에잠긴사제의얼굴처럼고 요했다. 나선형문양, 점각, 사슴형상, 기하학적패턴이이어지는 돌의표면은그의미를완전히드러내지않지만오래된인 류의목소리가천천히울리고있었다. 신라귀족들이남긴 명문은 서체의 오래됨과 무관하게 이상할 만큼 생생하다. 그들이바라보던강과숲의색을떠올리며돌의온기를손 끝으로천천히더듬어본다. 해가기울고강의물빛이하루의마지막색을품기시작할 무렵, 잠시강가에앉아본다. 돌은햇살을머금은채온기 를간직하고바람은가을의향을실어왔다. 유산을지킨다 는것은단지오래된자취를보존하는일이아니라시간을 품은생명을미래로이어주는일이라는생각이스친다. 암각화는끝내아무말도하지않았다. 그러나그앞에서 보니오히려더많은말을떠올리게된다. 자연을읽기시작 한 선사인의 지혜, 신라 사람들이 남긴 발자국, 그리고 그 모든숨결을오늘의우리가또다른역사의층위로이어가 고있다는사실. 내가보고만진것은차가운돌이아니라 수천년동안이땅이품어온시간그자체였다. 그깨달음 만으로도 반구대와 천전리에서의 하루는 오래도록 마음 속에서잔잔히빛날것이다. ●박윤정(주)민트투어대표 프랑스에서 대학 생활 을하며유럽여행문화 를익혔다. 귀국후스스 로를 위한 여행을 즐기 겠다는 마음으로 2002 년 민트투어 여행사를 차렸다. 20여년동안맞 춤 여행으로 여행객들 의 취향에 맞는 여행을 디자인하고있다. 2021년4월여행책‘나도한번은트레킹페 스티벌크루즈’와이듬해6월‘나도한번은발트3국발칸반 도’를쓰고냈다. 울산암각화박물관서반구대·천전리잇는여정 대곡리반구대암각화. 울산암각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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