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5년 12월 19일(금) ~ 12월 25일(목) A10 새벽의공기는여행자를가장먼저깨운다. 겨울의햇살은 아직눈을뜨지못한채, 산등성이사이로허옇게피어오르 는안개만이계절의시간을보여준다. 오늘의첫목적지는 기장 깊숙이 숨어 있는 아홉산 숲.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그 어떤 도시보다 멀리 떨어진 듯한 고요가 깃든 곳이다. 나는차에서내려아직잠에서덜깬대지위로조심스레발 을들여놓았다. 부산 기장 철마면 아홉산 자락에는 4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 집안이 품어온 숲이 있다. 52만㎡(15만 7000여 평)에 달하는 이 거대한 숲은 전쟁의 상흔 속에서도, 개발 의 광풍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다.‘아홉 개 골짜기가 겹쳐 있다’는뜻에서유래한이름처럼숲은겹겹이쌓인시간이 풍경이돼서있다. 금강송과대나무가서로의어깨에기대고, 햇빛은나무줄 기사이로얇은결을남기며스며든다. 발바닥아래의흙은 포근하다. 빛보다먼저깨어난이끼가토양위에푸른숨결 을 깔아 두었다. 바람이 스치고 지나면, 대나무 숲은 마치 바다처럼출렁인다. 이곳은 인간의 계절이 아닌 숲의 시간이 흐르는 곳이다. 잠시길위에멈춰서자, 새들이무심히나를스쳐날아올 랐다. 그순간, 영화스크린속장면이눈앞에펼쳐진다. 화 면에서는느낄수없던진짜숲향이코끝을파고든다. 숲길을완만히내려오자, 관미헌의아궁이에서피어오르 는김치국밥향이허기를자극한다. 부산에서꼭먹고싶었 다고 말하니, 매표소 직원이 웃으며“그건 직원들 식사예 요. 요즘은판매안합니다”라고설명해준다. 아쉬움을뒤 로하고,기장에서이름난한우촌으로향한다. 철마한우, 지금은사육을멈췄지만, 그때의자부심을잇 기위해‘소고기축제’를이어간다. 철판위에서서서히녹 아내리는한우의지방이고르게스며드는순간, 숯불의온 기보다깊은향이피어올랐다. 갈빗살을소금에살짝찍어 한점넣으니,미세한육즙이혀끝을적신다. 기름은부드럽게녹아내리지만, 고유의감칠맛은오래도 록입안에흔적을남긴다. 한도시의추억은때때로한끼의 맛으로기억된다. 부산은바다만의도시가아니었다. 육지 의풍요가바다로흘러드는도시임을이렇게경험한다. 기장의고즈넉함을뒤로하고차는해운대로향한다.바다 는언제나도시보다먼저깨어있고, 더늦게잠든다. 해운 대의오후, 파도와빛이부서지는소리위로외국인들의웃 음이흩어졌다. 그들과함께작은양조장이운영하는수제 맥주펍의야외자리에앉는다. 그래프트비어란공장에서찍어낸기성품이아니라사람 이빚은개성과철학이담긴맥주다. 지역의공기, 물, 취향 이한잔에녹아든다.홉의쌉쌀함을깊게끌어올리거나과 일 향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 부산의 짠 바다 바람을 한층머금은맥주는다른어느도시에서도맛볼수없는풍 경의맛이다. 맥주를한모금머금고눈을돌리니, 해운대는자유의상 징처럼반짝이고있다. 파도는눈앞에서부서지고, 그소리 는목을타고내려가는맥주와어우러져또하나의바다를 만든다. 이순간, 여행은이도시의분위기에제대로젖어든 다. 해가저물기시작하자해운대는전혀다른도시로변모한 다. 어둠이드리우기도전에모래사장위로별빛같은조명 이 하나둘 켜진다. 겨울의 바다를 환히 밝히는 의식, 해운 대빛축제가시작된것이다. 길게이어지는산책로에는빛 의 터널이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그 빛 속을 자유롭게 오 간다.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불빛을 쫓고, 연인들은 서로의 그림자를끌어안았다. 바다의숨결은눈에보이지않아도, 귀를기울이면여전히어둠아래에서부서지고있다. 파도 와불빛이만나부산의겨울이완성된다. 아침에지나온아홉산숲의적막, 점심식탁위에서터진 진한 풍미, 오후의 바다를 닮은 맥주, 그리고 지금 눈앞에 펼쳐진밤의축제. 서로다른시간과온도가완벽한하루를 완성한다. 아홉산숲이과거의시간을품고있다면, 해운대 는현재의속도를보여준다. 그리고이둘을오가는여행자 의 마음은 자연스레 미래를 향해 한 걸음 더 내디딘다. 숲 의아침을지나바다의밤으로이어지는하루. 조용함과생 동감이교차하는도시,부산이다. ●박윤정(주)민트투어대표 프랑스에서 대학 생활 을하며유럽여행문화 를익혔다. 귀국후스스 로를 위한 여행을 즐기 겠다는 마음으로 2002 년 민트투어 여행사를 차렸다. 20여년동안맞 춤 여행으로 여행객들 의 취향에 맞는 여행을 디자인하고있다. 2021년4월여행책‘나도한번은트레킹페 스티벌크루즈’와이듬해6월‘나도한번은발트3국발칸반 도’를쓰고냈다. 부산기장‘아홉산숲’에서해운대로이어진하루 해운대빛의축제. 부산기장철마면에위치한아홉산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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