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6년 1월 6일 (화요일) D7 기획 美사상최악인종폭력피해자$“100년넘어도고통은현재진행형” 을들어주었다. 그렇게 허망하게 꺼지는 듯하던 털사 학 살의법적정의의불꽃을 다시지핀게 2006 년플레처등고령생존자들의생생한증언이 었다. 당시106세최고령생존자플레처는털 사 학살이보고서로정리될수있는 ‘역사’가 아니라여전히치유되지않은상처와악몽으 로고통받는개인의현재진행형비극이란 사 실, 공소시효가 미치지못하는 국가 - 공동체 의도덕적의무가얽혀있는미완의정의란사 실을,여러인터뷰와 국회증언등을 통해역 설했다. 플레처는 평생 가난에 허덕이며 만 85세 가 될때까지가사노동자로일했다. 수많은 고용주가 연방법상의사회보장세 ( social security tax ) 를 납부하지않아연금 혜택 도못받은탓이었다.그의아들도,중등시절 ‘올 A 우등생’이었다는 손자 ( Ike Howard ) 도 학비가 없어학교를 중퇴하고 군에입대 해야 했다. 그렇게가난은 대물림됐다. 개인 과 가계의자산 형성 - 축적과정에부동산 소 유여부가결정적인변수이며,미국의인종차 별적주택정책 ( Redlining ) 등이흑인빈곤 - 대물림에끼친영향에대한저서와논문은넘 쳐난다. 하버드대주택경제학자 네이선 넌 ( Nathan Nunn ) 은털사학살로인해2000 년기준 현지흑인주민이주택을 소유할 확 률이26%P 감소한것으로추정했다. 2020년 대털사 남부백인다수지역빈곤율 ( 13.4% ) 대비그린우드지역흑인빈곤율이 33.5%에 달하고, 2020년털사의흑인가구 중간소득 ( 3만463달러 ) 이백인가구 ( 5만5,448달러 ) 에 비해현저히낮다는평등지표보고서도새로 운관점에서주목받았다. 변호인단은사건100주년을앞둔 2020년, 민사소멸시효와무관한 ‘공중방해 ( Public Nuisance ) ’ 법리를 적용해시당국을 다시 법정에세웠다.공공의권리나복지,안전을침 해하는 불법행위로인해‘현재에도지속되는 피해’에대해 ‘방해행위를 제거 - 교정하도록’ 하는 조항을 활 용한 거 였 다. 변호인단은 털 사 학살의진상 은 폐 와재건방해,이 후 지속 된 차별적주택정책등을 근 거로 들었다. 소 송 원 고인 플레처와 남동생 휴스 ( Hughes E llis, 2023년별세 ) , 플레처보다 6개 월늦 게 태 어난 레시 랜 들 ( L essie Randle ) 이하 원 청 문회에서증언한것도 소 송 이진행되던중 이었다. 플레처는 “ 나는평생 매 일학살의기 억 속에서살아 왔 다. 국가가 그역사를 잊더 라도나는 잊 지않을것이고, 잊 을수도없다. 다 른 생존자들도, 우리 후 손들도 잊 지않을 것이다 ” 라고 말 했다. 플레처는 손자아이 크 와 함께 2023년자서전‘그들이 내 사연을 묻 게 두 지 마 라 ( D on’t L et T he m B ury M y S tory ) ’를 출 간했다. 오클 라호 마 주대법 원 은 2023년 9월 그소 송 도최종기 각 했다.‘단 발 성사건’에공중방 해조항을 적용하는 건무리라 판 단한 거 였 지만, 양 상만 다를 뿐 본질 은 같 은 수많은 ‘단 발 성사건’을 법 원 이감당하게될가 능 성 을차단하고 싶 었을지 모른 다. 대법 원 은 “ 학 살사건의여 파 로그린우드지역이 겪 어 온 지 속적인불이 익 은 법 원 이아니라 정책입안자 들이해결해야 할 세대 - 사회적불평등 ” 이라 고 판 결문에 덧붙였 다. 하지만 바 이넘 ( G . T . B ynu m ) 당시시장은 “ 100년전 범죄 로인해 현재주민들이재정적으로 처 벌 받아서는안 된 다 ( … ) 금전적 배 상의유일한 재 원 은 흑인 을 포함 한 모든 털사 주민의세금으로 충 당 해야하기때문 ” 이라고 밝혔 다. 뉴욕 의기 업 가 겸 ‘비 즈 니 스 포 굿 재단’ 자 선가에드 밋즌 ( E d M it z en ) 이소 송 과 별개 로 2022년플레처등생존자들에게100만달 러를기부했다. 플레처는 그 돈 으로 혼 자기 거하던 낡 은 원룸 을 떠 나 요양원 에입소했다. 그는소 송 에서이 겨배 상금을받으 면 하고 싶 은게무 척 많았다.안경과 보 청 기를 맞 추고, 새 집 과 새 옷 도 사고, 무 엇 보다간호사가 꿈 인증손 녀 의대학학비를보 태 주고 싶 어했다. 유년시절플레처의 꿈 이간호사 였 다.털사학 살의최고령생존자비올라플레처는저소 박 한 꿈 을이 루 지못한 채 향년111세로 숨졌 다. 이제남은건동 갑 인 랜 들한 명뿐 이다. 최윤필기자 미국 역사는 18 6 3년 에이 브 러 햄 링컨 의 ‘재건 포 고령’ 이 후 약 15년을 ‘재건 시대 ( Reconstruction E ra ) ’라 구 분 한다. 비로 소 노 예 가아니라 ‘시민’이 된 흑인들이학교 에가고, 선거에도 출마 하고, 상 품 으로 뿔뿔 이 팔려갔 던가 족 친지가다시 모 여소 작농 이 나 임 금노동자로적으나 마 자 본 을축적하며 미 래 를설계하던시기. 18 77 년 북 부연방군이 철 수하자 마 자 남부 백인 사회는 그들의‘재 건’을 본격화 했다.인종 분 리차별의‘ 짐크 로 법’의시대.흑인들은문해 력 시 험 과납세이 력 등 새로운 법 - 제도적장 애 물에가로 막 혀 투 표권을도로 빼앗겼 고, 더 는소유물도아니어 서 더 무자비해진 KKK 등의 테 러와 린치를 감당해야 했다. 18 9 6년연방대법 원 은 ‘ 분 리 하되평등하다 ( S e p arate but Eq ual ) ’는 판 결로그차별에법적정당성을부여했다.인종 주의백 래 시는 민권법과 투 표권법이제정 된 1 9 60년대까지사실상적법하게자행됐다. 오클 라호 마 털사 ( T ulsa ) 의흑인 마 을 그 린우드 ( G reenwood ) 도 짐크 로 시대의산 물이었다. 1 9 01년동부 유전개 발 로 급 성장 한 오클 라호 마 는 1 9 0 7 년주 승격 과 동시에 짐크 로 법을 제정했고, 털사가 석 유회사 본 사와금 융 기관등이 밀집 한거점도시로 흥 성 해지 면 서흑인들은변 두 리로 떨려났 다. 그들 이주로정 착 한 털사 북쪽 그린우드는,이 름 과달리거의 황 무지 였 다. 1 9 05년흑인사 업 가 오타 와 걸 리 ( O ttawa W . G urley, 186 7~ 1 9 35 ) 가간선 철 도 ( F risco Railroad ) 너머 그린우드 땅약 5만평을 매 입했다. 그는주택을지어흑인들에게공 급 하 고 자 립 정 착 금을 빌려줘 가게를 열 고 농 지 를개간하게했다.그렇게점차주민이불어나 고 종자상과 잡화 상 등이 잇 달아 생 겨났 다. 인 디애 나주 립 대로 스쿨출신 흑인변호사 J . B 스트래 드 퍼 드 ( J . B . S trad f ord, 1861 ~ 1 9 35 ) 는 법률 사무소를 열 고 객 실 55개 규모 의 근 사한 호 텔 을 지었고, 사 업 가 사이 먼 베 리 ( S i m on B erry ) 는버 스 회사를설 립 했다. 그 들 소수의비전과 헌신 덕에그린우드는 1차 대전종전무 렵 극장과은행, 레 스토랑 , 병원 , 의상실과 양 복점, 신 문사등 1 9 0여개사 업 장 을 갖춘 주민수 1만 명규모 의자 타 공인‘ 블 랙월스트 리 트 ’로변 신 했다. 브루킹스 연구소 자 료 에 따르면 , 당시그린우드지구 내화폐 순환 주기는 평 균 1 9 개 월 에달했다. 돈 이 외 부로유 출 되지않고 마 을안에서상점 - 은행 - 부동산 - 교 육투 자 등으로 순환 하며 반 복적 으로 가치를 창출 했다는 의미다. 반면 당시 백인지역사정은사 뭇 대조적이었다. 유가가 급락 하 면 서유정들이 놀 기시 작 했고,전장에 서 청 년들이 돌 아 오면 서 취업 난은 더 가중됐 다.그들에게그린우드는 눈엣 가시 였 다. 백 래 시성차별은동기나 양 상 면 에서전통 적차별과사 뭇 다 르 다.일방적권 력 관계에기 반 한전통적차별과달리권 력 재 분배 에 따른 위기감과상실감 ( 역차별정서 ) 으로 촉발 되는 백 래 시성차별은기존 질 서 - 기득권회복이라 는 명분 에시기 심 과복수 심 까지 스 며 더격렬 해지기 쉽 다. “ 단일사건으 론 미국역사상최 악의인종 폭력” 이라불리는 1 9 21년5 월 31일 의‘털사인종학살’이그렇게시 작 됐다. 5 월 30일, 1 9 세 흑인 구 두 수선공 ( D ick Rowland ) 이1 7 세백인여성 엘 리 베 이터안 내원 ( S arah Page ) 을성추행한 혐 의로체 포 됐다. 발 이미 끄 러 져 가 볍 게부 딪 친게전부여 서 청 년은이 내석 방됐지만, 흥분 한 백인 군 중에게중 요 한 건진실이아니었다. 그 날 밤 그린우드로 몰려 간 수 천 명 의무장 폭 도는 흑인주민들을 닥 치는 대로 구 타 - 살해하고, 가게와 집 들을 방 화 - 약탈 했다. 쌍발 기가 소 이 탄 을 퍼 부었다는 증언도있었다. 다 음 날 까지 약 16시간동안자행 된 ,‘전시군사 작 전’ 을방불 케 한그만행으로그린우드 35개 블 록이 폐 허가 됐다. 주택등 건물 1,200여 채 가 사라 졌 고 흑인 100 ~ 300 명 이 숨 지고 800 여 명 이중경상을입었다. 백인 사상자는 극 소수 였 지만 주방위군과 경 찰 은 쌍 방 폭 동 으로 규 정, 흑인생존자 수 천명 을 강 제연행 해수주일동안감금하고 폐 허정비등에 강 제동 원 했다. 마 을지도자들은 주동자로 몰 려 재 판 을 받았지만 백인은 단 한 명 도기소 조차되지않았다.피해 액 은부동산 150만달 식 기록을 지웠고, 마 을 공동 묘 지에비 석 도 없이 집 단 매 장 된희 생자들도 잊 혀 갔 다.생존 자들역시공 포 의 트 라우 마 와생존권이 담 보 된 사회적 압박 속에서침 묵 하며기 억 조차 애 써외면 했다. 그렇게사건은 잊힌 역사가 되 어 갔 다. 1 99 5년4 월 ,미국과전세계를경악게한 오 클 라호 마 폭탄테 러가 터 졌 다. 그 사건과 후 유증으로 신 문이도 배 되다시피하던그해 5 월 31일,그린우드문 화센 터에서조 촐 한행사 가 열렸 다. 테 러에대한 전국적관 심 을 촉매 삼 아, 지역시민종교단체가 7 4년전사건생 존자와 후 손등을 초 대해 마련 한 ‘털사 폭 동’ 희 생자추 모 행사 였 다. 참석 자들은 센 터 마 당 한 편 에 작 은추 모 비도세웠다.그렇게사건이 공 론화 되고진상 규명 을 요 구하는 청원 이시 작 되 면 서주의회가 97 년진상조사위 원 회를 발족 했다. 위 원 회공 식명칭 도 ‘털사인종 폭 동조사 오클 라호 마 위 원 회’ 였 다. 3년 뒤 위 원 회는‘ 폭 동’이백인 폭 도들에의해저 질 러진일 방적인 ‘학살’이었고, 시당국과 경 찰 이중 요 문서들을 파 기하는등사 태 의진실을고의은 폐 해 왔 다고 발 표했다. 위 원 회는 막 대한인적 물적피해에도불구하고법적정의도공적보 상도이 뤄 지지않은만 큼 생존자 및후 손에대 한 직접배 상과보상이 필요 하다고권고했다. ‘털사 폭 동’은그제야 ‘털사학살’로재 규 정되 기시 작 했다. 흑인인권법률가 등의주선으로 2003년 당시생존자 123 명 과 200여 명 의 후 손이시 당국을 상대로 첫 연방 소 송 ( D ead m on v . C ity o f T ulsa ) 을제기했다. 지방 - 항소법 원 은 민권소 송 소멸시효 ( 2년 ) 를 들어소를 기 각 했고 2005년연방대법 원 도하 급 법 원 의손 러와 동산 7 5만 달러 ( 2024년기준 약 4,000 만달러 ) 로추산됐다. 법 - 제도에기 반 한백 래 시성차별과 폭력 의야만적효과는도드라진 소수를 분 리 - 통제 함 으로 써 소수 집 단의결속 력 을 약화 하고 저항 - 재건의지를 ‘ 합 법적’으 로 좌 절시 킨 다는 데 있다. 걸 리등 마 을지도 자들은빈손으로 마 을을 떠 나야했고,가 족 - 재산과 희 망까지 잃 고 잔류 한생존자들은상 존하는위 협 과공 포 속에서항변은 커녕 기 억 조차 억 누 르 고 살아야 했다. 7 세소 녀 비올 라플레처 ( V iola F letcher ) 도그들중한 명 이었다. 오클 라호 마 코 만치 카 운 티 에서소 작농 부 부의8남 매 중 둘째 ( 차 녀 ) 로 태 어난플레처는 어 머 니 - 의 붓 아버지와 함께 그린우드로이주 해성장했다. 썩 부자는아니었지만그들에 겐 집 과일터가있었다. 플레처는 온 주민이 함 께 했던교회 예배 와 소 박 한 주 말 가 족 만 찬 메 뉴 , 남 매 가 함께 거실에 모 여부 르 던복 음 성가의선율을 100년세 월 이 흐 른뒤 에도기 억 했다. 학살의 밤 , 일가 족 은 거의 맨몸 으로 집 을 나와 북쪽 약 30 마 일 거리의 클 레어 모 어 ( C lare m ore ) 숲 으로피 신 했다.어 둠 속에서 보고 들은연기와 화 염 , 전장을 방불 케 하던 총 성과비 명 소리,거리에나 뒹굴 던시 신 들. 함 께 피 신 한이 웃 들과 함께 플레처일가는 반 딧 불이를 잡 아 어 둠 을 밝 히고, 토 끼를 사 냥 해 끼니를때우고, 두려 움 에 떨 며 셋씩 무리지어 숲 속 간이 화 장실을 다 녔 고, 얼 마 간 진정 된 뒤 부터는 떠돌 이 천막 살이를하며 농업 노동 자로 살아 갔 다. 초 등학교를 중퇴하고 목 화 수확등일당 벌 이에나 섰 던플레처는16세무 렵 언니와 함께 그린우드의한백인 잡화 점에 취업 했다.그무 렵 그린우드상권은백인들에 게넘어가있었다. 전성기그린우드 흑인들이진입하지못한 업 종중하나가보 험업 이었다.위 험분 산을위 해전국 규모 의재보 험 시 스 템 에의존해야하 는보 험업 은자 본 금 규모 등허가조건과 규 제가 까다로웠다. 그 래 서흑인들은 소 규모 장 례 - 생 명 보 험외 에재산보 험 은 엄 두 를 내 지 못했다. 사건 후 백인보 험 사들은 ‘ 폭 동 내 란 소 요 사 태 로인한손실에대해서는보 험 금지 급 을 거부할 수있다’는 면 책조항을 근 거로 흑인들이 청 구한 1,400여건의보 험 금지 급 을 거부했다. 학살 100주년이던 2021년 5 월 미하 원 사 법소위 청 문회에서플레처는이렇게증언했 다. “ 당시 내 이 웃 들은부자 였 다. 돈 만많았던 게아니라문 화 적으로,공동체적유산으로우 리는 풍 요 로웠다.당연히 내 가 족 에게도 근 사 한 집 이있었다. ( … ) 그 모든 게불과 몇 시간 사이몽 땅 사라 졌 다. ” 플레처는 3 2년 결 혼 한 남 편 ( Rober t F letcher ) 과 함께 캘 리 포 니아새 크 라 멘 토 로 이주해 2차대전전시조선소 용 접 보조공으 로일했고,가정 폭력 으로이 혼 한 뒤 어린아들 을 데 리고 다시털사로 귀 향했다. 그는 백인 가정의가사노동자등으로일하며전남 편 과 낳 은아들 등 2남 1 녀 를 혼 자 부 양 했다. “ 백 인주인 집 설거지를하다가, 또 어린 애 를재우 다가,‘어 쩌 면 그들 ( 주인 ) 도 내 유년기를 파 괴 한이들중일부가아 닐 까’생 각 하곤했다 ” 고 그는2023년인터뷰에서 말 했다. 털사 학살은 근 100년간 ‘ 폭 동 ( riot ) ’이었 다. 오클 라호 마 의공 립 역사 교과서는 그 사 건을 거의언 급 조차 하지않았다. 경 찰 은 공 일곱살때겪은학살의밤 노예해방이후흑인들이개척한마을 사소한사건계기백인들무차별폭동 흑인수백명사망, 건물 1200여채불타 70년넘게잊힌역사 경찰공식기록삭제, 추모비하나없어 생존자들트라우마속애써기억외면 95년첫추모, 97년진상조사위발족 최고령생존자로생생한증언 평생가난에허덕, 85세까지가사노동 “국가가잊더라도나는잊을수없어” 생존자들소송은끝끝내기각당해 가만한당신 세상에서가장더디게쓰는부고 Viola Fletcher 1914.5.5~2025.11.24 비올라플레처 1921년미국오클라호마주털사의흑인마을 ‘그린우드’에서자행된백인폭도들의살육-약탈은 ‘미국역사상최악의인종폭력’으로기억된다.사건 당시만7세소녀였던비올라플레처는그사건최고령 생존자로서당시의악몽을증언하고법적정의실현을 위해마지막까지분투했다.그는 ‘털사인종학살’이 추모비나진상보고서문건에갇힐역사가아니라 현재진행형비극임을삶으로웅변했지만법은그의 정의를외면했다. blackwallstreet.org 1921년5월31일밤부터시작된16시간여의학살- 약탈로폐허처럼변한그린우드지구풍경.사건전 그린우드는미국전역을통틀어가장번영한 흑인지구라는명성과더불어 ‘블랙월스트리트’라는 별칭으로불렸다. Library of Congress 쌍방인종갈등이빚은 ‘폭동’으로규정된그사건은근 100년뒤주정부진상조사보고서를기점으로백인 폭도들에의한일방적인 ‘학살’로재정의되기시작했다. ‘폭동’이었던탓에그린우드주민들은전재산을잃고도 보험금조차받지못했고,이후주요상권은백인들에게 넘어갔다.사건직후폭동가담자로연행되는흑인 주민들. tulsahistory.org <1921년털사인종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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