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6년 1월 23일(금) ~ 1월 29일(목) A10 도시가자연과협상하는법 남아프리카에첫발을내디딘곳은케이프타운이다. 공항 을빠져나오자여름공기라고느끼기에는생각보다차갑고 단단하다. 도시의등뒤로는평평한정상의산이버티듯서 있고시야앞쪽으로는바다가열린다. 항구의시간, 대학가 의활기, 식민건축과현대디자인이같은프레임안에자연 스럽게겹친다. 무엇보다이도시는자연을‘배경’으로두 지않는다. 구름은산의가장자리를더듬듯넘어가고바람 의방향에따라날씨와일정이수정된다. 택시기사도, 호텔 컨시어지도“오늘은 산이 열리지 않을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계획을따르는것이아니라자연의판단을받아 들이는태도.이유연함이케이프타운여행의첫규칙이다. 포도밭으로이어지는풍경의지도 도시를벗어나자풍경은즉각바뀐다. 스텔렌보스, 팔, 프 란슈후크로이어지는케이프와인랜드는고도와토양, 해 풍의미세한차이가스타일을갈라놓는정교한지도다. 도 로의굴곡을따라포도밭이열리고닫히는장면만으로도, 이땅이얼마나세밀하게나뉘어있는지체감하게된다. 남아공 와인의 위상은 더 이상‘가성비’라는 단어에 기 대지않는다. 오래된덩굴이만들어내는농축미, 과도하지 않은알코올, 명확한산도등국제품평에서반복적으로확 인된장점들은우연이아니라축적된결과다. 프란슈후크의 골짜기에 자리한 부켄하우츠클로프는 이 름부터 토양을 불러낸다.‘부켄하우츠’라는 너도밤나무 를뜻하는옛네덜란드어의흔적은이지역의역사적층위 를 조용히 암시한다. 이곳의 시라(포도 품종)는 남아공이 왜세계시라지도에서중요한좌표가됐는지를설득력있 게보여준다. 검은과실, 후추, 야생허브의결이분명하되 과장되지않는다. 숙성은구조를다듬고산도는리듬을만 든다. 테이스팅룸에서서포도밭을내려다보면경사진지 형이한눈에들어온다. 힘이아닌균형으로기억되는와인 의이유가이풍경속에있다. 뮬리뇌 & 리유는 남아공 와인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 한다. 스와트랜드의다양한토양을병렬로해석한시라들 은‘장소의차이’를교과서처럼보여준다. 선형의긴장, 또 렷한 미네랄리티는 남아공이 결코 단일 스타일이 아님을 증명한다. 이곳의철학은와인에머물지않는다. 숙소와레 스토랑, 예술 컬렉션으로 확장된 리우 컬렉션은 여행자의 감각을 단계적으로 연다. 환대는 서비스가 아니라 설계이 며, 그설계가와인의인상을증폭시킨다. 유럽의기술위에 남반구의빛과바람이더해져새로운해석이태어난다. 멋 진와이너리식당에서한잔의와인이장소의기억이되는 순간을경험한다. 오르지못한산 ‘테이블마운틴’ 케이프타운의상징인테이블마운틴은그날, 끝내모습을 열어주지않았다. 케이블카는멈췄고구름은정상에눌러 앉았다. 오르지못한산은분명아쉬움을남겼지만, 동시에 이도시의규칙을다시가르쳤다. 자연이허락하지않으면 기다릴것.여행자는계획을접고시야를낮춘다.이도시에 서‘놓침’은실패가아니라하나의방식이다. 색으로기억지키는골목 ‘보캅’ 호텔로돌아오는길에들른보캅은전혀다른시간대에속 해있었다. 언덕을따라늘어선파스텔빛집들, 말레이공동 체의 역사, 향신료 냄새가 겹쳐진 공기. 식민지 시기의 이주 와 억압의 역사는 오늘의 색으로 재해석된다. 이곳의 색은 장식이 아니라 선언이다. 이 골목을 걷는 순간,“남아공을 이해한다”는말이얼마나단순한지깨닫게된다. 도시가자 연을이해하는방식, 허락되지않은산, 색으로기억을지키 는골목. 이모든장면이케이프타운을, 그리고남아프리카 를설명한다. 남아프리카는분명멀다. 그러나풍경과와인, 그리고기다림의태도를통해다가가면이해의거리는생각 보다가까워진다.바람의대륙은그렇게,천천히말을건다. ●박윤정(주)민트투어대표 프랑스에서 대학 생활 을하며유럽여행문화 를익혔다. 귀국후스스 로를 위한 여행을 즐기 겠다는 마음으로 2002 년 민트투어 여행사를 차렸다. 20여년동안맞 춤 여행으로 여행객들 의 취향에 맞는 여행을 디자인하고있다. 2021년4월여행책‘나도한번은트레킹페 스티벌크루즈’와이듬해6월‘나도한번은발트3국발칸반 도’를쓰고냈다. 바람의대륙 ‘남아프리카’로향하다 테이블마운틴의구름낀풍경. 아프리카대륙남단으로향하는여정은출발순간부터시간의감각을바꾼다.인천을떠나중동의허브를경유하거나유럽의 대도시를건너다시남하하는항로는최소하루를요구한다.기내스크린에떠있는지도는점점추상화되고식사와수면이몇 차례반복된뒤에야비로소현실이된다.착륙과함께마주한남아프리카공화국의첫인상은‘멀다’가아니라‘깊다’에가깝다. 인도양과대서양이만나는바다,고원과사막,초원과도시가겹겹이놓인지형은단일한서사를허락하지않는다.식민의역사 와해방의정치,광물과농업의경제가서로를규정해온이나라는한문장으로요약되기를끝내거부한다. 프란슈후크의골짜기에자리한부켄하우츠클로프와이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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