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6년 2월 6일(금) ~ 2월 12일(목) A10 볼더스비치-펭귄이사라진시간 볼더스 비치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자연’이 아니라‘시설’이다. 방문자 센터, 안내판, 목재 보드워크, 그리 고사람의동선을철저히제한하는난간들. 이곳은단순한해변이아니라남아공국립 공원이관리하는보호구역이다. 펭귄을가 까이에서보기위한장치들이아닌인간을 일정거리밖에세우기위한구조물이라는 점에서인상적이다. 보드워크 아래로 둥근 화강암 바위들이 파도를부드럽게걸러내고, 그안쪽에는작 은 만처럼 잔잔한 바다가 형성돼 있다. 이 안정된지형이바로아프리카펭귄, 일명케 이프펭귄이 번식지로 삼은 이유란다. 남아 공에서자연번식하는유일한펭귄종이다. 펭귄들은 인간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바다에서 막 올라와 젖은 깃털을 말리는개체, 모래위에몸을낮춘채눈을 감고있는개체,새끼곁을지키는어미의단 단한 자세. 장면은 평화롭지만, 그 평화는 결코자연상태의결과가아니다. 20세기 초 수백만 마리에 이르렀던 아프 리카펭귄의개체수는현재수만마리수준 으로감소했다고한다.산업어업은주먹이 인 정어리와 멸치를 고갈시켰고 해수 온도 변화는먹이의이동경로를바꿨다. 여기에 기름유출사고와해안개발,관광압력까지 겹치며 번식 성공률은 지속적으로 낮아졌 다. 그래서이곳에서‘보호’란적극적인개입 이 아니라 한 발 물러서는 선택에 가깝다. 보드워크는 편의 시설이 아니라 자제의 장 치다. 사진을 찍을 수는 있지만 만질 수는 없고, 가까워 보이지만 다가갈 수는 없다. 모래위에남은펭귄의발자국을바라보며 ‘귀여움’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쉽게 현실 을가리는지떠올렸다. 며칠 전 싱가포르의 한 동물원에서 펭귄 을 보고 온 친구가 얘기를 전한다. 열대의 도시 한복판, 철저히 통제된 공간 속에서 펭귄들은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 아이들 은환호하고서로들사진을찍는다. 바다가 없는그곳에서…. 볼더스 비치의 펭귄과 유리 너머의 펭귄 사이의차이는분명하다. 하나는위험속에 서 스스로의 리듬을 유지하고, 다른 하나 는안전속에서자연을잃는다. 이해변에서 자연보호란무엇을더하는일이아니라무 엇을멈추는일이아닐까?생각해본다. 희망봉-이름이바뀐자리, 질문이남은곳 볼더스 비치를 떠나 남쪽으로 더 내려가 자풍경은급격히거칠어진다. 바다는더이 상 보호받지 않고 바람은 방향을 잃지 않 은채절벽을타고오른다.희망봉에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순간 바람이 몸을 밀친다. 모자를 눌러 잡지 않으면 날아갈 것 같은 세기다. 많은이들이이곳을‘아프리카최남단’이 라생각하지만, 실제최남단은아굴라스곶 이다. 희망봉은지리적끝이아니라상징의 끝이다. 대서양과인도양이만난다는설명 역시 과학적 사실이라기보다는 항해자들 이체감한경계의언어에가깝다. 그럼에도 이곳이특별한이유는바다가아니라결단 의역사때문이다. 포르투갈의항해자바르톨로메우디아스 는 1488년 이 곶을‘폭풍의 곶’이라 불렀 다. 그러나왕주앙2세는이이름을희망봉 으로바꾼다. 이는낙관이아니라전략이었 다. 육로 무역이 막힌 시대, 바다는 위험이 자유일한탈출구였다. 이곶을넘을수있 다면 인도로 가는 길이 열린다. 희망이란 감정이아니라국가적선택이었다. 절벽 위에서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서 있자, 수많은 항해자들의 망설임이 겹쳐진 다. 돌아갈것인가, 더나아갈것인가. 희망 봉은위로의장소가아니라결단의장소였 다.바람은지금도같은질문을던진다. 남아공남쪽서멈춤과전진사이 돌아오는 길, 해변의 색색의 오두막과 아 이들이파도속으로뛰어드는장면이눈에 들어온다. 보호 구역 밖, 삶은 계속되고 있 다. 자연은 보존되고 동시에 사용된다. 그 균형은언제나불안정하다. 해가 기울 무렵 희망봉의 바다는 은빛으 로 변한다. 그 빛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바 위사이를걷는작은생명을떠올린다.희망 은거대한절벽위에서만태어나지않는다. 때로는보드워크하나를더세우는결정속 에, 때로는 이름을 바꾸며 바다로 나아간 역사속에남아있는것이아닐까? ●박윤정(주)민트투어대표 프랑스에서 대학 생 활을하며유럽여행문 화를 익혔다. 귀국 후 스스로를 위한 여행을 즐기겠다는 마음으로 2002년민트투어여행 사를 차렸다. 20여 년 동안맞춤여행으로여 행객들의 취향에 맞는 여행을디자인하고있다. 2021년4월여행책 ‘나도한번은트레킹페스티벌크루즈’와이 듬해 6월‘나도 한번은 발트 3국 발칸반도’ 를쓰고냈다. 남아공 ‘볼더스비치’의펭귄그리고희망봉 볼더스비치. 아침의케이프타운을떠날때도시는아 직완전히깨어있지않았다. 테이블마운 틴의평평한능선아래에서바다는먼저 빛을받아들이고있었다. 남반구의아침은 늘바다쪽에서시작된다. 오늘의여정은 도시를벗어나케이프반도를따라남쪽으 로내려가는길, 볼더스비치와희망봉을 잇는하루다. 지도위에서는하나의관광 루트로단순화되지만, 실제로는이나라가 감당해온생태의상처와역사적선택을 함께통과하는길이다. 차가남하할수록케이프타운의도시적 밀도는빠르게풀린다. 고층건물은사라 지고바다는도로가장자리까지바짝붙 어온다. 절벽은인간에게필요한만큼만 자리를내주고, 그이상은허락하지않는 다. 이길에서자연은배경이아니라조건 이며인간은늘가장자리에서조심스럽게 이동하는존재로남는다.

RkJQdWJsaXNoZXIy NjIxM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