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6년 2월 27일(금) ~ 3월 5일(목) A10 택시승강장으로내려가자구역별로정렬 된 줄이 정확히 나뉘어 있다. 안내 직원은 목적지를묻고번호를확인한뒤지정된차 선으로손짓한다.절차는명확했고,흐름은 끊김이 없다. 그러나 차문을 여는 순간, 전 혀 다른 감각이 밀려왔다. 깊이 밴 담배 냄 새와 차가운 공기. 낯선 도시와의 첫 악수 는 결코 쾌적하지 않다. 오히려 그 거친 질 감이이도시의표정으로다가온다. 북경은 3000년이상이어진도시문명의 압축된 무대다. 원나라의 대도(大都) 계획 도시위에명·청왕조가황궁을세웠고, 20 세기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 중심지 로 재편됐다. 제국과 공산주의, 전통과 현 대, 관광과 통제가 한 공간에서 겹쳐진다. 그래서이도시는단순한여행지가아니라 체제의현장을직접마주하는경험처럼다 가온다. 천안문광장-공간이만드는심리 며칠 뒤, 영하의 바람을 가르며 천안문 광 장으로향했다.약44만㎡에달하는이광장 은세계에서가장넓은도시광장가운데하 나다. 남북으로길게뻗은직선은권력의의 지를닮아단호하다. 북쪽에는자금성의정 문 천안문이, 남쪽에는 인민영웅기념비와 마오쩌둥기념당이,동서로는국가박물관과 인민대회당이 자리한다. 건축은 말을 아끼 지만,그배열은분명한이념을드러낸다. 광장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검문과 여 권 확인을 거쳤다. 긴 줄이 이어졌고, 가방 은 반복해 검색대를 통과했다. 공항을 연 상시키는 절차가 도심 한복판에서 펼쳐진 다. 머리위를둘러보면 360도로회전하는 CCTV가촘촘히설치돼있다. 감시의밀도 는상상을넘어선다. 여행자시선이아니라 관찰당하는존재의위치에서있다는감각 이분명해진다. 광장 한가운데 서니 의외로 외국인은 많 지 않았다. 소규모 투어 그룹에 합류했는 데, 영국인세명과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여행자한명이함께였다. 서로의국적을 확인하는 짧은 인사 속에서 이 공간이 품 은 국제정치적 상징성이 새삼 선명해진다. 1989년의기억, 개혁개방의시간, 국가서 사의중심지. 천안문은단순한광장이아니 라현대중국의상징적무대다. 그럼에도 광장의 표정은 놀라울 만큼 차 분하다. 질서정연한움직임, 침묵에가까운 분위기. 소란도구호도없다. 거대한공간은 개인을 점처럼 작게 만든다. 그 안에 서면 누구나하나의좌표가된다. 자금성-황제의도시, 오늘의무대 광장을 지나 북쪽으로 이동하면 자금성 이 모습을 드러낸다. 1420년 명나라 영락 제가완공한이황궁은500여년동안명· 청24명의황제가거처한공간이다. 약980 여동건물과 8000개가넘는방. 붉은성벽 과황금빛기와는제국의색채를여전히간 직하고있다. 입장절차는광장과다르지않다. 예약확 인과여권검사, 그리고또한번의보안검 색.내부로들어서자전혀다른장면이펼쳐 졌다. 전통복식을차려입은젊은방문객들 이 곳곳에서 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명·청 궁중의상을현대적으로재해석한한푸(漢 服) 차림은 마치 사극의 한 장면을 연상시 킨다. 황제의 권위가 머물던 공간은 이제 셀카 와 관광의 무대가 됐다. 그러나 건축이 주 는위엄은여전하다. 태화전앞의넓은석조 마당, 용이 새겨진 난간, 엄격한 좌우 대칭 구조. 이는 단순한 미학이 아니라 우주 질 서를반영한유교적세계관의구현이다. 황 제는하늘의아들이며, 궁궐은천지의중심 이라는사상. 자금성은권력의건축교과서 라부를만하다. 손끝이 얼어붙는 추위 속에서도 붉은 담 장너머로스며드는겨울햇빛은묘하게따 뜻하다. 이곳은 과거의 유산이면서 동시에 오늘날중국의자부심을상징한다. 세계최 대 규모 궁궐 유적은 이제 문화 유산을 넘 어국가브랜드가됐다. 춘절기다리는도시 음력 설을 앞둔 도시는 점차 붉은빛으로 물들고 있다. 홍등이 걸리고,‘복’(福)자 를 거꾸로 붙인 문이 늘어나며, 붉은 봉투 가 상점마다 쌓여 간다. 중국에서 춘절은 단순한명절이아니라가장중요한가족의 례다. 수억명이고향으로이동하는‘춘운’ (春 运) 은세계최대규모인구이동이라불 린다. 이들에게설은휴일이아니라귀환의 시간이다. 아무리급속히성장한현대도시 라해도, 명절만큼은과거와의연결을확인 하는순간이된다. 광장에서 느낀 압도감, 자금성에서 마주 한과거의웅장함,그리고설을기다리는시 민들의분주한움직임은서로다른시간대 를가리키고있는듯하다. 전통은어떻게현 대와공존하는가. 북경은 단순한 수도가 아니다. 과거의 제 국과 현재의 국가가 겹쳐진 거대한 역사적 무대다.그무대위에서여행자는잠시관찰 자가되지만, 동시에관찰당하는존재가된 다. 그 묘한 긴장 속에서야 비로소 도시의 진짜표정을들여다본다. ●박윤정(주)민트투어대표 프랑스에서 대학 생 활을하며유럽여행문 화를 익혔다. 귀국 후 스스로를 위한 여행을 즐기겠다는 마음으로 2002년민트투어여행 사를 차렸다. 20여 년 동안맞춤여행으로여 행객들의 취향에 맞는 여행을디자인하고있다. 2021년4월여행책 ‘나도한번은트레킹페스티벌크루즈’와이 듬해 6월‘나도 한번은 발트 3국 발칸반도’ 를쓰고냈다. 설을앞둔북경…거대한광장위의침묵 천안문광장. 김포를떠난비행기는두시간남짓만에북경상공으로들어섰다. 한 반도의겨울과닮은듯하면서도어딘가다른회색빛하늘아래, 도시는 넓고단단한윤곽을드러냈다. 수도규모는공항에서부터감지된다. 활 주로를벗어나도착장으로이어지는긴동선, 사람들의무표정한얼굴, 체계적으로정돈된안내시스템. 북경은중국의정치적심장답게질서 와통제를동시에체현하는공간이었다. 자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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