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6년 2월 28일 (토요일) 오피니언 A8 시사만평 데이브와몬드작 <케이글 USA-본사특약> 인공지능의 지배 챗GPT… 어떻게 하면 내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지? 아주가까운미래에: 구스타보 두다멜이 자신의 20 년 가까운 LA 필하모닉 음악감 독의역사를마무리하는마지막 시즌에 선택한 작품이 베토벤의 ‘장엄미사(Missa solemnis)’라 는사실은우연처럼보이지않는 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이 곡 이“많은 지휘자들에게조차 감 히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작품” 이라고말했다. 기술적으로방대 하고 구조적으로 난해하기 때문 만은 아니다. 이 곡은 지휘자의 세계관을드러내는작품이기 때 문이다. 신앙과 인간, 이상과 현 실, 평화와 불안을 한꺼번에 끌 어안아야 하는 음악. 20년의 시 간을 건너온 지휘자가 마지막에 던질 질문으로, 이보다 더 적확 한선택이있을까. 장엄미사는 단순한 종교음악 이 아니다. 가톨릭 미사 통상문 을 텍스트로 삼았지만, 그 안에 는 한 인간이 시대와 운명을 향 해 던진 근원적 질문이 담겨 있 다. 신에게바치는찬가라기보다, 인간스스로를향한고백에가깝 다.베토벤은후기로갈수록정치 적으로도,사랑에서도,건강에서 도깊은실망을경험했다.계몽주 의의이상은현실권력앞에서왜 곡되었고,‘불멸의연인’에게보 내는편지속열정은끝내삶으로 이어지지못했다. 청력을거의상 실하며그는점점고립되었다. 그러나 베토벤은 그 고립을 절 망으로남겨두지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서 더 깊은 사유를 길어 올렸다.인간이성과존엄에대한 신뢰, 계몽주의적이상은종교적 형식을 통해 한층 더 확장된다. 장엄미사는교리를반복하는작 품이아니라,인간존재의의미를 묻는음악이다. 악보에남긴“마 음에서 우러나와, 다시 마음으 로”라는 문장은 단순한 헌사가 아니다.고통과실망을통과해도 달한믿음의언어다. 두다멜의 지휘는 정적이지 않 았다. 그는 단상 위에서 거의 도 약하듯 몸을 던졌다. 두 팔은 쉼 없이 음악을 밀어 올렸고, 눈빛 은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끝까 지 붙들었다. 그러나 그 격렬함 은 과장이 아니라 집중의 산물 이었다. 그는 템포를 과시적으 로밀어붙이기보다,각성부의결 을정교하게맞물리게하며긴장 과해방의흐름을설계했다.특히 ‘Credo’의 집요한 반복은 신앙 고백이라기보다 질문처럼 들렸 다. 믿는다는 말이 아니라, 끝까 지붙드는의지처럼. 스페인에서 온 합창단은 이 거 대한구조의중심축을단단히세 웠다.‘Gloria’의환희는밝되가 볍지않았고, 음향은화려하기보 다 밀도 있었다. 선명한 라틴어 딕션과치밀한성부균형은복잡 한대위속에서도투명함을잃지 않았다. 이 미사의 영적 긴장을 지탱하는기둥과도같았다. 솔리스트 가운데 한국인 테너 백석종이그역사적무대에함께 했다는사실은더욱뜻깊었다.그 는고음을힘으로밀어붙이지않 고 맑고 곧은 선으로 그려냈다. 합창과오케스트라사이에서튀 지않으면서도분명한존재를드 러냈고, 섬세한프레이징으로음 악의결을매끄럽게이어갔다. 세 계적인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함께하는이상징적무대에한인 성악가가 당당히 자리했다는 사 실은 개인적으로도 큰 기쁨이었 다. 무엇보다‘Agnus Dei’가 오 래 남는다. 평화를 구하는 기도 는단순한의식이아니라절박한 요청처럼울렸다. 베토벤은이악 장에전쟁을암시하는불안한리 듬을 삽입했다. 평화는 쉽게 주 어지는것이아니라,위기속에서 고통을 이겨내는 간절한 마음으 로붙들어야함을역으로강조하 는 게 아니었을까. 두다멜은 그 긴장을끝까지유지했다. 덕분에 이장엄미사는박제된걸작이아 니라,오늘의현실을비추는현재 형언어처럼들렸다. 베토벤은 후기의 실망 속에서 도인간에대한신뢰를결코거두 지는 않았다. 그의 예술은 단순 한 위로가 아니라, 고뇌 끝에 도 달한확신이었다. 그렇게마음의 평화를, 평정심을유지하는방향 을 제시한다. 두다멜이 20년의 시간을마무리하며이작품을선 택한 이유 역시 그 지점에 있을 것이다. 분열과 갈등이 일상이 된 시대, 가장 어려운 곡을 통해 가장근원적인질문을던지는것. 그것이 그가 LA 필과 함께 남기 는마지막선언처럼느껴졌다. 도약하는지휘, 그리고그에응 답하는목소리들.그날의장엄미 사는종교를넘어인간의존엄과 연대를노래하는음악이었다. 그 리고 두다멜의 LA 필하모닉 마 지막시즌은,베토벤의고뇌와예 술적승화에기대어또하나의역 사를기록하고있었다. 손영아 문화 칼럼니스트ㆍYASMA7 대표 한국춘추 두다멜의 ‘장엄미사’ 바람이 사납다. 가랑잎들이 먼 발치로날려가고있다. 제뿌리곁 에 눕지 못하고 한참을 날아간다. 모태를 떠나기 싫은 아쉬움의 몸 부림으로 보인다. 일기가 영하로 치달으며 싸늘해 지는 풍경들이 겨울 전유물처럼 쓸쓸함을 더해 간다. 해마다 겨울을 만나고 떠나 보내면서도 늘 그랬듯이 겨울 매 마름을절감하게된다. 잡을수없 는 세월이란 말이 겨울이면 부쩍 선명해진다. 잎들의마지막낙하 의절규는겨울이물러날때까지 이어진다. 잎새들의 마지막 모습 이 고운 것만이 아닌 왠지 처절해 보이는것도겨울이주는나이때 문일게다. 이렇듯낙엽을떨구고나목이되 듯삶의부분을잃어가는것이나 이들어간다는것이란생각이밀 려든다. 살아간다는 것이 매일 매 일의흔적이면서 또한소멸돼가 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기에 시간 시간을, 하루들을 잃어가고, 계절 을, 한해를잃어가고있는것이다. 그렇게살아가는게당연하단듯 받아 들였던 일상들을 이 겨울은 새로운눈뜨임으로나를이끈다. 생명으로 잉태되어 모태를 떠나 고 세상을 만나고 어머니 품도 때 가 되면 동생에게 내어주어 야 했 고세상얼룩을몰랐던맑은유년 도 그리움으로 돌아서고 꿈 많던 여학생 시절도 젊음이 란 신기루 에게 내어주었다. 서서히 세상을 알아가고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안게 되고 자녀들에게 열정을 쏟 으며 인생을 달려왔다. 삶의 윤곽 이 보이기 시작하고 산다는 것을 음미하게 되고 긴 노정 끄트머리 에 당도한 이제 사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비워내며. 최소 한의 것 외엔 지니지 않는 가벼움 으로 가랑잎처럼 가을 바람에 실 려다녀야한다는것이겨울이주 는연륜이었다. 어렸을땐얼른자라서어른이되 고 싶었다. 어른들이 가진 능력과 앞서서 가고 있는 발자국들을 따 라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때론 어 른들만이가진무한자유의높은 한계로 부러움을 불러들였던 것 같다. 얼마전어르신이란존칭을받았 던날,잠을이루지못할만큼어른 이란 단어가 불현듯 가슴을 파고 들었다.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이 결코 무한대의 자유를 누리며 대 접만받는것이아닌어른다움을 짊어져야한다는무거움으로다가 왔다. 가끔은 어른하기가 싫을 때 가 있기도 했었고 잠깐씩은 어른 이란 짐을 놓아두고 아이로 살고 싶은 적이 있었음도 감출 수 없음 이다. 문득성경구절이떠오른다. ‘지혜에는아이가되지말고,악에 는어린아이가되라’는말씀이다. 어른이란더많은외로움을견뎌 야 하고 허전함도 상처도 두엄처 럼썩힐줄알아야하는것이어른 다움이며 어떤 동요나 떨림도 숨 길줄아는능숙한삐에로여야하 기 때문이다. 어른이란 성장의 이 룸이 아니라 진행형 과정으로 생 의마지막까지이어지는것인데이 사실을 어른이나 어른이라 불러 주는 젊은이들 끼지도 잊고 있는 듯 하다. 쫓기기라도 하듯 한달음 에 달려온 시간들 속에 놓아버린 것들을그저바라만보고있을수 밖에없는허망함앞에새삼많은 것을 유실했다는 생각을 앞질러 아름다움으로 주위에 머물러 있 는더많은것들이눈에들어오는 것도 겨울이 전해 주는 연식이었 다. 실책과 어수룩한 사람을 염려해 주는 따뜻한 이웃과 가족이 곁에 있기에 감사가 넘친다. 어차피 우 리인생도나이테를늘려가기위 해 추운 계절을 지나야 하기에 겨 울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 보노라 면나이드는것도아름다울수있 을것같다는여유를얻는다. 전국을눈폭풍으로몰고가는일 기로 하여 황량하고 메마른, 적막 하고 시린 겨울 소리와 고요한 겨 울시간앞에거대한우주속의지 구라는 푸른 별이 우리네가 살아 가고 있는 세상이라는 사실이 더 각별해진다. 인간이인간인까닭, 내가나다워야하는까닭까지묵 묵히 지켜보듯 겨울은 나이테를 한 켜 더해주는 길목에서 서서히 퇴색되듯깊어가고있다. 이겨울은세상을관망하며기쁨 을 모색하라는 지혜가 실린 이정 표를새롭듯옮겨주고떠나려나 보다. 나이다운 성숙한 자유와 비 움의 미학이 설정해 온 마지막 열 정 마저도 품으라는 듯 여유와 넉 넉함으로이끌어준다. 겨울이전해주는나이는삶의향 기를 남기고 떠나라 일깨워준다. 나이만 들어버린 노친 네라 꾸짖 지않으며. 김정자 시인·수필가 행복한아침 겨울이 주는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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