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6년 8월 18일 (화요일) 세상은지금혼돈에빠져있습니 다. 도덕적혼돈, 사회적혼돈, 정치 적 혼돈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 니다. 그러나그보다더깊고근본 적인 혼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 로 기독교란 무엇인가, 그리고 교 회란 무엇인가 하는 혼돈입니다. 오늘우리는가장본질적이며중요 한이질문앞에서있습니다. 기독교란무엇입니까? 교회란무 엇입니까? 이 질문이 단순한 신학 적 탐구에 머무를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이 질문에 대한 오 해가오늘날교회의혼란과세상의 절망의 주된 이유이기 때문입니 다. 이질문에권위있는해답을얻 기위해우리는교회가맨처음태 동되었던사도행전으로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사도행전2장에서교회의 기원과 시작을 접하게 됩니다. 교 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사도 행전 2장 1-2절에잘나타나있습 니다. 이본문은교회의본질과교 회가 부여받은 일, 그리고 교회가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 여주고있습니다. 여기에서무엇보 다 강조되고 있는 것은 교회의 기 원이하나님의행동이라는사실입 니다. 사도행전의 놀라운 부흥의 역사 는 사도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사도들은 스스로 자신 들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자주 말 했습니다. 그들은 당시 배운 자들 과 권세자들에게 학문 없는 범인 으로무시당했습니다. 배운 것도 없고 권세도 없었으며 돈도없었습니다.오늘날우리에게 도 익숙한 홍보 수단이 전혀 없던 이들이스스로의노력과능력으로 사역을 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우스꽝스럽게보일뿐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 을까요? 여기에는단한가지답밖에없습 니다. 세상이 뒤집어진 것은 사도 들이 행한 일 때문이 아니라 하나 님께서 이들 속에서, 이들을 통해 하신일때문입니다. 이것이교회의의미와역할, 교회 의메시지와목적에대한본질적인 메시지입니다. 기독교는예수그리 스도의행동으로시작된사건입니 다. 사도행전2장에서보았듯이오 순절의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교 회는 하나님의 행동으로 세상에 출현했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기독교는 인 간의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 동입니다.교회는조직이나전통이 아니라하나님의주권적인역사입 니다. 성경의 출발점은 인간이 아 니라 살아 계신 창조주 하나님이 라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1장 1절 은“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고 시작됩니다. 이 세상 은 진화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여러분이이복음을올바르게이 해하기위해서는반드시창조주하 나님, 그 영광이 하늘에 충만하며 만물위에계시는분에게서시작해 야합니다.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 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 아 계시는 분일 뿐만 아니라 행동 하시는하나님이십니다. 오순절사건을다시한번생각해 보실까요? 제자들은 한자리에 모 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한일은기다리는것이전부였습니 다. 그렇게기다릴때홀연히하늘 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 리가들리고불의혀같은것이각 사람위에임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임재였고 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그들이 무엇을 계획했는지, 무엇을 전략적으로 실행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그들은 오 직하나님을기다리는마음뿐이었 습니다. 그리고그마음위에하나 님은역사하셨습니다. 지난 40년을목회해오면서나의 마음속에는하나님을기다리는마 음이 부족했음을 깨닫습니다. 하 나님을 기다리는 마음 없이는 결 코하나님을만날수없습니다. 기 독교는하나님을기다리는마음의 행동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모든 영적 각성과 회복은 하나님의주권적개입에뿌리를두 고 있습니다. 성경은 단순한 도덕 이나 윤리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책이며살아계신하나님 을 기다리는 행동의 책입니다. 창 세기에서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만나셨고, 죄를 지은 사람 들을찾아오셨습니다. 노아시대는홍수로세상을심판 하셨고,바벨탑사건에서는인간의 교만을흩으셨습니다.하나님은아 브라함을부르셨고야곱에게나타 나셨으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모세를부르셨습니다. 출애굽은 모세에게 불현듯 떠오 른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출애굽을 계획하지도 명령하지도 않았습니다. 출애굽을 시작하신 분은하나님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4장에서 하나님은 홍 해앞에선이스라엘백성에게“여 호와께서너희를위하여싸우시리 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당신의 아들을보내셨고행동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의역사는지금도계속되 고있습니다. 만일 교회가 인간의 조직이었다 면 이토록 많은 박해와 타락과 혼 란 속에서 이미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서 계속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 다. 경제의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 은 우리를 부르셨고 말씀을 주셨 으며성령으로충만하게하셨습니 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다 시선포되게하셨습니다. 교회의부흥은인간의전략이아 니라 하나님의 행동입니다. 살아 계시고행동하시는하나님께서급 하고 강한 바람을 보내주셨습니 다. 그분은왜행동하십니까? 바로 당신을구원하기위해서입니다. 사 도행전 2장 21절은“누구든지 주 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 으리라 하였느니라”고 기록합니 다. 우리모두는죄인입니다. 시편51 편 5절은“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 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고백 합니다. 로마서 3장 10절은“기록 된바의인은없나니찾는자도없 고”라고말합니다. 인간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유 일한희망은하나님이계시다는것 과 그분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구 원을베푸시는하나님이라는사실 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 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 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것이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여러 분이 구원을 받아야 하며, 하나님 께서 여러분이 구원받을 수 있도 록행동하셨다는메시지입니다. 사랑하는여러분, 여러분은이하 나님을 만나셨습니까? 야곱이 돌 베개를베고잠들었다가하나님을 만났듯이, 모세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하나님의음성을들었듯 이,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불의 응 답을 받았듯이 여러분은 하나님 을인격적으로만나셨습니까? 여러분의심령깊은곳에서하나 님께서그리스도안에서내게무엇 인가를 하셨다는 고백을 할 수 있 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신을 찾아오셨 습니다.하나님은지금도행동하십 니다.이하나님을만나셨습니까? 오피니언 A8 애틀랜타칼럼 이용희 목사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나 보셨나요 ”어떻게 지내?””건강하지?” “하는일은잘되고있지?”그런 안부전화를자주받던때가있 었다. 그 전화에는 반가움의 온 도, 걱정의온도, 그리움의온도 가있었다. 어느날문득전화가 뜸해졌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의 안부를 묻지 않고 지내고 있었다. 안부는 상 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 한것이었다. 휴대폰안에는수백명의이름 이있다. 그러나막상전화를걸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 될까? 안부 전화가 필요치 않은 사람 도있고, 너무오래연락하지않 아 망설여지는 사람도 있다. 안 부전화는소식을묻는말뿐아 니라, 당신을 잊지 않았다는 짧 은 고백이 된다. 요즈음에는 전 화 걸고 싶다고 바로 걸기가 주 춤거려지기도한다.혹시바쁘지 는않을까, 폐를끼치는것은아 닐까 하는 마음이 앞선다. 겉으 로는 상대를 배려하는 것 같지 만, 이미그생각속에중요하지 않다는 느낌이 있고, 바쁘니까 내 전화를 반가워하지 않을지 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 톡 을먼저보내”지금통화괜찮아 요?”아니면“편한시간에전화 해요.”하고상대의마음을묻는 다. 안부를 묻는 일에도 허락이 필요한시대가된것같다. 반대로 나도 누군가의 전화를 얼른 받지 않는다. 전화번호부 터 확인하고 받는다. 모르는 번 호는 한 번쯤 망설이게 되고 다 시걸려오면그때받아야지마 음먹는다. 쓸데없는전화도, 또 이상한 전화도 많이 걸려온다. 자녀들은 모르는 번호는 받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우리는 안부보다경계가앞서는시대에 살고있다. 톡은 공동체나 평범한 사람들 의소식을두루알려준다. 사람 들의 생각이 점점 평준화되어 가는듯하다. 톡을열면하루에 도 수십 개의 메시지가 올라온 다. 여행사진이올라오고, 맛집 이 소개되고, 손주들의 재롱이 이어진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 은셀폰안에서모두만날수있 다. 화면은쉼없이주고받는문 자로 깜빡이지만, 정작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는 드물다. 정보는넘쳐나지만마음은쉽게 오가지 않는다. 각자 바쁘게 살 아가는 세상이다. 이제는 자식 에게도 마음 내키는 대로 전화 를걸게되지않는다. 혹시회의 중이아닐까, 운전중은아닐까, 중요한 모임 중에 있지는 않을 까하는생각이먼저든다. 그래 서“시간괜찮니?”하는톡을먼 저 보내고, 답이 오기를 기다린 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기 위해 조심스러워졌는 지도모른다. 조금여유있게안 부전화를 주고 받던 아날로그 시절이새삼그립다. 짧은 안부 전화 한 통이 톡 수 십 개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다. 소식은넘쳐나는데안부는귀해 졌다. 소식은 누구에게나 전할 수 있는 정보다. 하지만 안부는 관심있는 마음이기에 기다림이 있고따뜻함이있다. 밥은잘먹 었는지, 밤잠은편히잤는지, 좋 은일이있었는지, 그사람의하 루가 궁금할 때 안부는 비로소 살아있는말이된다. 안부전화 는 오래 하지 않아도 된다.“잘 지내?”한마디면 충분하다. 그 한마디에 따뜻한 온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누군가 에게안부전화를걸어보고싶 다. 그사람의안부를묻기위해 서가 아니라 내 마음의 온도를 잃지않고싶기때문에. 안부전화의온도 조형숙 시인ㆍ수필가 미주문협 총무이사 삶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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