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19년 2월 8일 금요일 | 22 라이프 지난일요일저녁에떡국을끓여먹 었다. 우려낸 사골국물(첨가물이 안 들어있는)에냉동실에있던, 썬가래 떡과살치살몇점을더해푹끓이고계 란한알을풀었다.마무리로통후추를 갈아뿌렸는데향을맡자어떤기억이 떠올랐다.명절,특히설이면상에올랐 던쇠고기뭇국이었다.양지머리국물 에다시마,때로는두부도들어간국으 로추석에는무대신토란을썼다.고소 하면서도단내를풍기며끝에는무의 신맛이감도는국물위에후추를솔솔 뿌리면 알싸함과 매캐함이 퍼지면서 화룡점정, 음식이완성되었던순간을 아직도기억하고있다. 어린 시절 내내 후추는 직육면체의 양철통에담긴고운가루였다.한동안 빨간색과흰색이던통(제조사맥코믹) 의색깔은언젠가부터노랑,검정,흰색 (제조사오뚜기)으로바뀌었다.마법까 지는아니지만후추는음식의표정을 찰나에극적으로바꿔주는힘을지녔 노라고언제나믿어왔다. 세월이흘러 1999년, 한층업그레이 드된후추를만났다.‘후추좀갈아드 릴까요?’당시하나의문화로자리잡 았던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점원이 허니 머스터드 드레싱을 끼얹은 만다 린치킨샐러드를가져온다. 접시를식 탁에올리고, 요청을받으면옆구리에 끼고있던기다란나무통을돌려통후 추를 즉석에서 갈아준다. 어디에선가 생일축하노래가울려퍼지는가운데 후추의향이식탁에피어오른다.양철 통에담긴가루가품고있던알싸함과 매캐함외에도달콤함등가늘고섬세 한 향이 가닥가닥 함께 딸려 나온다. 쇠고기뭇국을완성시켜주는후춧가 루의표정도놀라웠는데그게전부가 아니었구나.후추는좀더다양한표정 의향신료라는,작은깨달음을얻었다. 통후추향살리는후추갈이 또 20년이흘러 2019년 1월의어느 일요일아침,숙원이었던후추통교체 를시작했다.오랫동안이케아의후추 갈이를써왔는데일단병의직경이너 무 두꺼워 돌리기 위해 손에 쥐면 다 소불편했다.게다가뚜껑의갈이도내 구성이썩좋지는않아점차잘안갈 린다.후추갈이의‘날’은칼날과사뭇 다르다. 커피그라인더와비슷하게원뿔형에 나선으로 이가 난‘버(burr)’를 쓴다. 알고보면맷돌과도비슷한원리로,통 후추를갈지않고부숴알갱이내부의 향화합물을더잘뽑아내준다.갓갈 아낸신선함도그렇지만,다소불규칙 하게부숴내기때문에후추의향이한 결더도드라진다. 일본에출장을갈때마다백화점상 층부에들러조리도구를샅샅이살펴 보고한두가지씩사온다.이번에는국 자와후추, 간장, 기름병일습등을들 고왔다.패밀리레스토랑은이제명맥 만조금남은채사라져버렸지만후추 의업그레이드는한구석의예외만빼 놓고는완전히정착했다. 가장간단하 게는마트에서일체형을사는것만으 로도갓갈아낸후추의향을즐길수 있다.유리병에후추가담기고뚜껑이 곧갈이인제품말이다.하지만아무래 도내구성이약할뿐더러갈아내는굵 기의조정도불가능해서정말간단한 해법을찾을때에만권한다. 그렇지않고여유가조금이라도있다 면통후추와갈이를따로사서쓰는게 좋다. 심지어건전지로작동하는제품 이나온지도오래되었다.한손으로들 고스위치만누르면후추가갈려나와 편한데다가 조리하는 과정에서 식재 료(특히 닭고기)를 다룬 손으로 만져 벌어질수있는교차감염의위험도줄 여준다. 후추껍데기입힌스테이크 ‘다들거슬릴지경으로후추를너무 많이쓴다고생각한다.소금은재료에 녹아들지만 후추는 그렇지 않다.’미 국의거장셰프토마스켈러가‘프렌 치 런드리 요리책’에서 밝힌 후추의 철학이다.고기라면후추가반드시필 요하지만생선은아닐수도있고,특히 흰살생선이라면눈에띄지않는백후 추도있으니습관적으로흑후추를쓸 필요가없다는의미이다.애초에별로 복잡한이야기도아니지만뒤집어생 각해보면 적어도 고기에는 흑후추를 마음놓고써도되는것아닐까? 그렇 다면고기를굽자. 모든 스테이크에 후추가 필수라지 만흔히생각하는양념이상의역할을 맡는경우도있다.바로후추스테이크 (Steak auPoivre)이다.여느고기요리 처럼갈아솔솔뿌리는수준으로는어 림도 없고, 굵게 빻아 껍데기(크러스 트)가되도록넉넉하게둘러줘야이름 이산다.웬만한스테이크부위로얼마 든지만들어구워먹을수있지만대체 로후추스테이크에는안심을쓴다.이 유가 뭘까? 소의 안심(사실은 돼지도 마찬가지)은등심에둘러싸인원통형 의근육으로운동에거의관여하지않 는다.따라서굉장히부드러운대신맛 은밍밍하다. 쇠고기의맛이밍밍하다 니좀어색하지만등심, 채끝등다른 부위에비해그렇다는말이다.후추는 이밍밍함의공백을메워주는한편,안 심특유의부드러움과질감의대조도 이룬다. 후추갈이에 대해 살펴 보았지만 정 작후추스테이크에는통후추를직접 빻아서쓴다.굵고불규칙하게부숴진 알갱이가필요하기때문이다. 일단고 기부터.부드러운만큼이나굽는과정 에서모양이틀어지거나너무익어뻣 뻣해질수있으므로안심은적절한높 이(2.5㎝안팎)를갖춰준비해가운데 를요리용실로묶어준다. 고기가 준비되었다면 후추를 빻는 다. 2.5㎝의안심두쪽이라면통후추 를네작은술준비해마른종이행주나 제과제빵용유산지위에올리고편하 게다룰수있는팬이나냄비를꺼낸다. 오른손잡이라면 오른다리를 싱크대 에기댄뒤발을살짝들어온몸을올 린뒤내려오는힘으로통후추를빻는 다.공원에설치된철제체조기구로운 동흉내를내는것과비슷한느낌으로 부수는것이다.와작와작빠직빠직부 서지는소리에나름스트레스도해소 된다.열번정도되풀이해후추알갱이 를굵게빻는다. 통에담아가는것보 다훨씬더굵고거칠게,통후추알갱이 를 6~8쪽으로나눈다는느낌으로갈 면된다.조각이균일하지않아도상관 없으니적당히빻아팬이나냄비바닥 에붙은것까지떼어내한데잘모은뒤 준비해둔안심을위에올린다. 손바닥 으로가볍게눌러후추알갱이를빼곡 하게붙인뒤,뒤집어반대면도똑같이 처리한다. 팬을센불에올려두른기 름에서연기가피어오를때까지아주 뜨겁게달궈, 레어(목표온도 52℃)로 익도록각면을3~5분지진다. 접시에 담아은박지로덮어10분간두었다가 먹는다.물론후추와별개로고기에소 금간은되어있어야한다. 후추에찍어먹는딸기맛은 고기를 구워 먹었다면 입가심 차례 다. 믿거나 말거나 후추는 딸기와 아 주잘어울린다.다만생딸기를후추에 찍어 먹는것보다는조금더공을 들 여야한다.딸기를씻어꼭지를잘라내 칼로세로2등분혹은4등분한다. 넉 넉한크기의주발에담아넉넉한설탕 과약간의소금을솔솔뿌려숟가락으 로잘버무린다. 술을마실수있는성 인이라면좋아하는,혹은집에둔리큐 르를약간뿌려주면향이배어한층 더맛있어진다.압생트나진같은종류 는물론, 싱글몰트위스키나럼, 심지 어 보드카도 괜찮다. 맛을 들이는 데 30분정도걸리니스테이크를준비하 기전에설탕에재워두기시작하는게 좋다. 스테이크를다먹고딸기에맛이배 었다면 공기나 유리잔 등에 나눠 담 은뒤후추약간을갈아위에뿌린다. 딸기향에한발앞서다가오는후추의 향이 그저 설탕에 재웠을 뿐인 과일 에 조금 더 세심한 표정을 불어넣는 다. 스테이크ㆍ딸기에솔솔…음식을찰나에바꾸는‘후추마법’ 식감을살리면서풍미를돋우는후추스테이크를만들때는굵게빻은후추를스테이크주위에넉넉하게 둘러구워야한다. 보통은흑후추를사용하지만용도에따라백후추,녹후추,적후추등을쓰면다양한맛을즐길수있다. 알싸한 맛 외에 다양한 표정 활용 따라서 양념 이상 역할 통후추 직접 갈아 써야 제맛 알갱이 굵게 빻아 뿌린 후추 스테이크에선 주재료 역할 딸기에 뿌려넣으면 맛 극대화 후추스테이크를만들때는후추를갈지않고불 균등하게빻아서써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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