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19년 12월 16일 (월요일) A6 책과 세상 가정부가 걸어 잠근 문, 그 너머엔 어떤 비밀이 헝가리 대표 소설가 서보 머그더 집안일 돕던 실존인물 모티브로 작가와 가정부의 오랜 우정에 미스터리 버무려 호기심 자극 알폰소쿠아론감독의영화‘로마’(2018)는1970년 대멕시코백인중산층가정을중심으로,이들을돌 보는젊은가정부클레오의삶을그린다.빨래를널 고,개똥을치우고,가족들을깨우는클레오는단순 한입주가사도우미가아닌가족들의기쁨과슬픔을 가장가까이에서들여다보고이를기꺼이함께나누 는존재다. 아버지가외도로집을떠나고클레오의 아이가사산되는상처를함께겪으며, 클레오와남 겨진가족들은서로를보듬는진정한의미의가족이 된다.쿠아론감독은“클레오의실제모델인가정부 리보로드리게즈는어릴적내게가장큰사랑을가 르쳐준사람이기도하다”고전했다. 서보 머그더의 장편소설‘도어’역 시, 헝가리부다페스트를배경 으로 저명한 작가인‘나’와 20년간‘나’의 집안일을돌봐준가정부에메렌츠와의오랜 우정을 그린다. 그러나 에메렌츠를 단순히 ‘집안일을돌봐준가정부’라고설명하는것 은어딘가적절하지않다. 에메렌츠는“노동에서 기쁨을 느꼈고, 노 동을 즐겼으며, 일이 없는 시간에는 무엇을 해야할지모르는”사람이다. 그러나동시에 “업무시간이후에는성가시게하지말라고, 이건급료에포함된것이아니라고”주인을 향해고함지를수있는사람이기도하다. 자신만의 방식대로 집안일을 해나가는 에 메렌츠는집주인의입장에서보기에는여간 까다로운 가정부가 아닐 수 없지만, 그녀는 특유의에너지로이들부부의삶에척척걸 어 들어와, 가장 믿음직스러우면서도 든든 한존재가된다. 박사인남편과‘나’는지성의측면에서보 자면 누구에게도 뒤질 것 없는 교양인이지 만, 자신만의방식대로집안의규율을만들 어내는 에메렌츠에게는 번번이 진다. 두 번 의 세계대전을 겪어내고 부모님을 잃은 뒤 어려서부터남의집하녀일을해야했던에 메렌츠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돌본다. ‘온화하고규정된틀에맞는’종류는아니 지만, 자신만의 무뚝뚝함으로 주변 사람을 사랑하는 에메렌츠와 달리, 정작 주변인들 은 받은 만큼의 사랑을 에메렌츠에게 돌려 주지않는다. 에메렌츠의유일한가족인조카는에메렌 츠의 금전적 지원에 감사하면서도, 그녀의 통장을 상속받을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사 실을 늘 상기시킨다. 에메렌츠를 충분히 존 중한다고 생각하는 부부조차, 종일 집안일 을하느라TV볼시간이전혀없는에메렌츠 에게 TV라는 무용한 선물을 한 뒤에 뿌듯 함을 느낀다. 그런 에메렌츠의 곁을 지키는 것은떠돌이강아지와고양이들뿐이다. 늘정갈한머릿수건을하고묵묵히자신의 자리를지킬것같았던에메렌츠가, 어느날 갑자기집의문을걸어잠그고스스로를가 두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다. 20년 간 부부의 집을 건사하고, 우편물과 전화를 담당했으며, 전신환을 수령했던 에 메렌츠. 건강식을만들어아픈사람들을돌 봤고, 떠돌이 고양이들을 거뒀던 에메렌츠. 그뒤에는병환과노쇠함, 고독과절망, 어찌 할수없는피폐함이자리하고있었다는것 을, 에메렌츠가스스로걸어잠근문을강제 로 열어젖힌 뒤에야 사람들은 깨닫는다. 에 메렌츠를거의잃을뻔한직후에,‘나’는알 게된다. “글을쓸수없게끔나를붙들어매고있 던모든일을내주변에서수행하고, 보이는 모든 결과 뒤에 서 있는 보이지 않는 인물, 그녀없이는나의필생의작품도없었다”는 것을. 서보 머그더는 소설과 시, 아동문학, 드라 마, 여행기, 에세이등전방위적으로탁월한 업적을남긴헝가리의대표작가다. 그가전 업작가로 평생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데에는머그더부부와오랜세월가까운사 이로 지내며 집안일을 맡았던 쇠케 율리어 라는실존인물이있었고, 그가이소설의모 티브가된것으로알려져있다. 지금도부다 페스트에는 작품의 무대가 된 거리와 작가 가살던집, 쇠케율리어가살던공동주택이 남아있다. 책은 결국 한 생을 묵묵히 타인을 돌봐온 이들에게 작가가 바치는 헌사이자, 그들의 돌봄으로 성취할 수 있었던 위대한 작품들 에대한작가의고백인셈이다. 한소범기자 ■도어 서보 머그더 지음 프시케의숲 발행 서보머그더의소설‘도어’는헬렌미렌(왼쪽) 주연의동명의영화로도만들어졌다. 서보머그더. <프시케의숲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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