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6년 5월 1일(금) ~ 5월 7일(목) A4 태초의흔적만지다 요선암에도착했을때가장먼저시선을붙 잡은 것은 바위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익 숙하게 알고 있는 단단한 덩어리의 형상이 아니었다. 강물이 오랜 시간 반복해 흐르며 깎아낸 둥근 구멍들, 이른바 돌개구멍은 자 연이스스로를조각한흔적이었다. 매끈하게닳은표면과그깊이를가늠할수 없는어둠은, 마치태초의시간이아직이곳 에 머물고 있는 듯한 감각을 남긴다. 강가로 내려가바위위에앉는다. 물은낮은소리로 흐르고, 바람은방향을바꾸며숲의냄새를 실어나른다. 인간의개입이최소화된풍경속에서, 감각 은 오히려 또렷해진다. 이곳에서의 휴식은 단순한쉼이아니라, 자연의시간속으로잠 시 들어가는 경험에 가깝다. 취한다는 말은 이럴때어울린다. 술이아니라, 풍경에취하 는일. 세월과빛의경계 요선암을뒤로하고숲길을따라걷는다. 길 은 넓지 않지만 정갈하고, 나무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서서 고요한 질서를 만든다. 발걸 음은자연스럽게정돈되고,생각은단순해진 다. 숲길의 끝에서 요석정이 모습을 드러낸 다. 단정한 정자 하나가 강을 내려다보고 있 다. 이곳은 단순한 전망대가 아니라, 자연을 마주하는 오래된 방식의 흔적이다. 인간이 풍경을 소비하기보다, 그 앞에 머물며 시간 을견디던방식. 조금더걸음을옮기면무릉리마애여래좌 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위에 새겨진 불상 의얼굴은빛에따라전혀다른표정을만든 다. 햇살이비스듬히스칠때, 얼굴의한쪽은 밝고다른한쪽은그림자로잠긴다. 그경계 위에서드러나는표정은인간의감정과닮아 있다. 고요하지만완전히비어있지않고, 침 묵 속에서도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는 얼굴. 그여백은오히려더깊은의미를품는다. 신앙과시간이머무는공간 법흥사에이르자공기의결이달라진다. 신 라시대창건된이고찰은단순한종교공간 을넘어, 오랜시간축적된신앙과수행의층 위를품고있다. 소나무숲이그시간을조용 히 증명한다. 사찰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는 정지된상태가아니라준비된침묵이었다. 경내 곳곳에는 석가탄신일을 알리는 현수 막이걸려있었고, 아직시작되지않은의식 의 기운이 은은하게 감돌았다. 기왓장 하나 에 이름을 적어 올려놓는다. 개인의 소망이 사찰의 시간 속에 겹쳐지는 순간이다. 경내 에 핀 목련은 이미 절정을 지나고 있었지만, 그 흰 꽃잎은 여전히 단정한 아름다움을 유 지하고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서 징효국사의 부도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돌로 만들어진 구조물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수행과 시 간이응축돼있다.사찰은늘그렇듯,눈에보 이지않는것을느끼게하는공간이다. 자연이만든상징적풍경 하루의마지막은선돌이다. 강가절벽위에 우뚝선거대한바위기둥. 오랜침식작용속 에서주변은깎여나가고, 오직그것만이남 았다. 자연이 만들어 낸 하나의 형태이지만, 동시에인간에게는끊임없이해석을요구하 는상징이된다. 강위로솟아오른바위하나. 그것은설명되기보다바라봐야하는존재였 다. 의미를부여하려는순간, 오히려그본질 은 멀어진다. 자연은 때때로 아무것도 말하 지않음으로써가장많은것을남긴다. 주변에서사진을찍던한택시기사가말을 건넨다.“여기는해질때가제일좋습니다.” 짧은 한마디에는 이곳에 대한 확신과 오랜 경험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잠시 말을 멈추 고함께서서석양을바라본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 선돌의 윤곽은 점점 또렷해지다가, 이내 어둠 속으로 천천히 스 며든다. 그는이곳의계절과시간, 그리고사 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차분히 들려줬다. 여행자는수많은풍경을지나치지 만, 때로는한사람의목소리를통해그풍경 을이해하게된다. 장소는눈으로보지만, 기 억은결국이야기로남는다. 영월의하루는그렇게저물었다. 자연이만 든형태와인간이남긴흔적, 그리고그사이 를잇는시간의층위. 마치강물이바위를깎 아내듯, 조용하지만 분명한 방식으로 마음 의어딘가를오래도록두드리고있었다. ●박윤정(주)민트투어대표 프랑스에서 대학 생활을 하며유럽여행문화를익혔 다.귀국후스스로를위한여 행을즐기겠다는마음으로 2002년민트투어여행사를 차렸다.20여년동안맞춤여 행으로 여행객들의취향에 맞는여행을디자인하고있 다.2021년4월여행책‘나도 한번은트레킹페스티벌크루즈’와이듬해6월‘나도한 번은발트3국발칸반도’를쓰고냈다. 강이시간을깎아만든풍경, 영월의하루 선돌 강원도영월로향하는길은서두름을허락하지않는다. 산은말없이제자 리를지키고, 강은시간의결을따라천천히스스로를흘려보낸다. 도시의 시간에익숙해진몸이이곳에들어서면, 먼저속도를내려놓게된다. 이하 루는특정한목적지를향하기보다, 자연과역사사이를건너는하나의흐 름에가까웠다. 움직임은있었지만, 그것은이동이아니라스며듦이다. 요선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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