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6년 5월 15일(금) ~ 5월 21일(목) A5 여행 전북 완주의 산길은 도시의 속도를 천천 히지워낸다.굽이치는도로를따라차가깊 은산자락안으로들어갈수록창밖의풍경 은 단순해진다. 낮게 깔린 안개, 젖은 흙냄 새, 막 잎을 틔우기 시작한 산 벚나무와 오 래된돌담. 여행은때로새로운장소를발견 하는 일이 아니라, 잊고 있던 감각을 회복 하는과정처럼느껴진다. 완주의 아원고택으로 향하는 길 역시 그 랬다. 몇해전처음이곳을찾았을때의기 억은지금도선명하다. 한옥과현대건축이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던 풍경, 산과 건축 사이를 흐르던 적막, 밤이 되면 시간이 멈 춘듯고요해지던공기. 이후 이 공간이 BTS의 뮤직비디오 촬영 지로알려지고, 최근에는드라마의주요배 경으로사용됐다는소식을들었을때도크 게놀랍지않았다. 아원고택은단순히아름 다운장소가아니다. 사람보다풍경이먼저 말을거는장소이기때문이다. 산아래숨겨진집 아원고택은일반적인전통한옥과는조금 다르다. 이곳은 과거를 재현한 공간이라기 보다, 오래된정신을현대적으로다시번역 한장소에가깝다.전통기와지붕아래로노 출콘크리트가이어지고, 오래된목재의결 옆에는미디어아트가놓인다. 그러나서로 는부딪히지않는다. 오히려각기다른시간 의층위가공간을더깊게만든다. 입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담장위의기와와그아래를감싼회색 콘크리트벽이었다. 차가운재료와따뜻한 재료가한공간안에서묘한균형을이루고 있다. 벽을타고오르는담쟁이는인공과자 연의경계를흐리게만들고,낮게드리운산 의능선은그모든풍경을부드럽게감싼다. 한옥의 아름다움은 종종‘비어 있음’에 서완성된다. 아원고택역시그렇다. 공간은 자신을 과시하기보다 비워진 여백으로 사 람을천천히안으로끌어들인다. 바람이스 치는 소리, 나무 바닥의 미세한 울림, 멀리 서 들려오는 새소리까지도 이곳에서는 하 나의풍경이된다. 박광성화백의작품앞에서 전시 공간으로 들어서자 박광성 화백의 작품들이조용한긴장감속에놓여있었다. 그의 그림은 단순히 형태를 보여주기보다 인간 내부의 감정을 응축된 에너지처럼 드 러낸다. 검은선은거칠고자유롭지만동시 에 절제돼 있었고, 화면 위 인물은 마치 형 체를 완전히 갖추기 직전의 존재처럼 보였 다. 무엇보다인상적이었던것은작품과공 간의관계다. 일반적인화이트큐브갤러리 였다면그림은훨씬차갑고독립적으로느 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은은하 게스며드는자연광이그림의감정을더깊 게만든다. 작품은 벽에 걸린 대상이 아니라 공간 안 에스며든또하나의풍경처럼존재했다. 먹 빛의선들은오래된한옥의기둥을닮아있 었고, 뒤틀린인물의형상은인간내면의불 안과 욕망을 말하면서도 이상하리만큼 고 요했다. 그긴장과침묵의균형이아원고택 이라는장소와놀랍도록잘어울렸다. 대나무숲을걷는시간 아침 공기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밤새 산의습기를머금은대나무숲은깊고차가 운 향을 품고 있다. 좁은 산책길을 따라 천 천히걷는다.바람이불때마다대나무줄기 들이서로부딪히며낮고마른소리를낸다. 그소리는오래된종이가스치는소리처럼 들려온다. 대나무 숲의 아름다움은 화려함에 있지 않다. 곧게뻗은선들이만들어내는반복과 침묵,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바람의 리 듬에 있다. 숲길 끝에서 내려다본 한옥 지 붕은산과거의같은색으로스며들어있었 다. 한국의 전통 건축이 아름다운 이유는 자연을 이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 앞 에서자신을낮추고풍경안으로스스로를 숨긴다. 그래서한옥은시간이지나도자연 속에서밀려나지않는다. 차한잔에머무는감정 아원고택에서경험한다도시간역시인상 깊다. 찻잔에 물이 닿는 소리, 천천히 피어 오르는 김, 차향이 공기 속으로 번지는 순 간까지모든과정이느리게흘러간다. 도시 에서는효율이중요한가치가되지만, 다도 는정반대의방향을향한다. 서두르지 않는 행위 속에서 오히려 감각 은더선명해진다.창밖의산과처마를바라 보며차를마시는동안시간은직선처럼흐 르지 않았다. 과거와 현재가 한 공간 안에 서겹쳐지는느낌. 그래서이곳은단순한숙 소가아니라감각을쉬게하는공간처럼느 껴진다. 고택을나서려던순간, 미처보지못한미 디어 아트가 공간에 또 다른 표정을 만든 다. 공간 위로 빛이 흐르고, 건축은 새로운 차원의풍경으로변한다.전통건축위에현 대의빛이입혀지지만그장면은낯설지않 다.아원고택은전통을박제하지않는다.살 아있는현재로끌어온다. 호수곁갤러리 ‘오스갤러리’ 아원고택을 나와 들른 오스 갤러리는 또 다른결의아름다움을보여준다. 호수를바 라보는이공간은갤러리보다는하나의사 색처럼느껴진다.잔잔한물위로바람이지 나가고, 창밖의풍경은그림보다더느리게 움직인다. 마침 유럽 작가들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 다. 독일 작가들의 작품은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보다존재와시간, 인간내면에대 한탐구에가까웠다.거친재료와절제된색 채, 일부러 남겨둔 여백은 오히려 더 많은 상상을불러낸다. 특히인상적이었던것은작품과공간의관 계이다. 콘크리트 벽과 자연광, 전시는 단 순히작품을나열하는방식이아니라, 장소 전체를 하나의 감정으로 완성하고 있었다. 갤러리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호수를 바라본다. 커피 향은 조용히 퍼지고, 산 그 림자는물위에서천천히흔들린다. 사람들 은낮은목소리로대화하고, 누군가는창밖 을바라본다. 예술공간의깊이는결국‘얼마나오래머 물고 싶은가’로 결정된다. 오스 갤러리는 그런의미에서충분히아름다운공간이다. 완주의산길을다시내려오며바란다. 이곳 의 아침 공기와 대나무 숲의 소리, 그리고 갤러리창가에머물던커피향이오래머물 기를…. ●박윤정(주)민트투어대표 프랑스에서 대학 생활을 하며유럽여행문화를익혔 다.귀국후스스로를위한여 행을즐기겠다는마음으로 2002년민트투어여행사를 차렸다.20여년동안맞춤여 행으로 여행객들의취향에 맞는여행을디자인하고있 다.2021년4월여행책‘나도 한번은트레킹페스티벌크루즈’와이듬해6월‘나도한 번은발트3국발칸반도’를쓰고냈다. 완주 ‘아원고택’과 ‘오스갤러리’서보낸하루 아원고택풍경. 대나무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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