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6년 5월 23일 (토요일) 악기를다루는분들과함께담소 를나누게된기회가주어졌다. 나 이가 깊어가면서 점차 악기에 대 한 선호도가 바뀌어 간다는 주제 로 대담을 이어갔다. 성품과 삶의 배경을 따라 악기가 전달하는 소 리가 다르게 적용되고 있음이 분 명했다. 대화중에언뜻유년주일학교예 배 시간에 풍금으로 찬송가 반주 를 했던 풍경이 떠오른다. 풍금소 리는 아련한 향수로 스며들고 있 었나보다. 감성적인 울림 공간의 여백이삶의공간에서도사람들과 의어울림에서도자연스레새겨진 소중한 보람으로 연연히 이어져 온것같다. 소리 미학은 물리적으로는 악기 마다 진동 울림통을 통해 발생한 공명 현상이 고유의 진동수와 일 치하면서공간으로퍼져나가는연 주라는 과정을 통해 표현되고 있 다. 같은맥락의흐름으로악기와공 간과의 조화가 일구어 낸 예술적 융합이 소리를 창출해 내는 과정 의 묘사가 음악에 깊이 심취하게 하는 소중한 요소로 작용된 것이 다. 특히풍금소리가님긴공명은아 스라한 먼 추억을 베경으로 미묘 한 편안함을 배풀어 주었다. 마치 안개비처럼지척없이스며들면서 때론 서술적 예시가 담긴 음률 융 합이울림을통해심성에깊게파 고들었던느낌이지금까지생생한 감동으로남겨져있다. 어릴때부터소리에관심이많아 서 였는지 계절마다 지닌 바람 소 리와 숲길에서 만나지는 새소리, 먼기적소리며교회종탑에서울 려퍼지는 종소리에, 때론 파도 소 리까지 곱고 부드럽고 우아한 흐 름들이참좋았다. 그중에서도풍 금소리는지금껏심중에정이가 는애잔한소리로남겨져있다. 풍금소리를만나기쉽지않은이 국 살이에서 간결한 연모의 그리 움으로 남아있다. 유년 주일학교 에서도, 유일한 악기로 풍금이 있 었고, 50년대국민학교재학당시 에도교실마다 풍금이자리잡고있었다. 예배당 에들어서면늘그자리에자리잡 고있는풍금이제일먼저눈에들 어왔다. 예배당이 주중에는 유치 원으로운영되기도했던시대라서 예배당은 또다른 안식처 같은 아 늑함을안겨주었다. 풍금소리에매표된어린여자아 이는 풍금 곁에 머물기를 좋아한 나머지 풍금 건반을 만지작 거리 곤 했던 아이에게 선생님은 악보 보는 법과 건반 누르는 법을 알려 주셨다. 유치원방과후에까지남아서풍 금곁을지키곤했었다. 풍금앞에 앉아 발로 페달을 밟고 손가락으 로 건반을 누르면 맑고 고운 소리 가울려나오는풍금이너무신기 하고좋았다. 선생님께서 수시로 가르쳐 주셨 고틈만나면풍금과가까이했던 터라 후일 선생님께서 주일학교 반주를 맡기셨고 그 작은 사명을 절대적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소 명 의식으로 풍금을 더욱 가까이 하게되었다. 반주했던풍금을늘반질반질윤 이나게 닦으면서 풍금을 아끼며 간수하는 마음이 애착으로 번져 나고있었나보다. 이방인의 삶이 시작되면서 피아 노 부터 마련했다. 아이들에게 전 인교육을 한답시고 피아노, 바이 올린, 플루트 등을 교습하게 되면 서 아이들이 악보없이 연주하게 되는 경지를 보면서 장엄한 아름 다움으로 승화되기도 했지만 풍 금소리는 여전히 귓전이 아닌 심 중에 머물면서 내 생을 보듬고 있 었다. 풍금소리는잊혀지지않는날들 을 고이 접어 두고 언제든 열어보 아 주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찬란한 수식어나 빛나는 경력 없이도 고난과 절망을 견딜 수 있었던 당찬 의지를 계속 공급 해주고있었다. 풍금소리가남긴것은고된이방 인의삶속에서도희망을잃지않 게 해주었던 낯섦 속에서 안식처 가 되어주었다. 때로는 실향민의 외로움을감싸주려는매개체로시 대적 아픔을 돌보아 주기도 했었 다. 화려하고 완벽한 디지털 사운드 대신 헐떡이는 숨결과 바람이 섞 여 만들어졌던 풍금 소리는 노년 의 길목으로 들어선 우리네들에 겐시대상으로는서툴수밖에없 는 세대적 격차가 느껴지는 배경 이존재하고있지만다사로운기억 을 남겨주기에 충분한 여운을 안 고시대적애환을 감싸주는위로 의보루가되어주었다. 마치꽃들이새봄을기다렸다는 듯이곱게피어나듯, 뿌리와중심 둥지와 가지가 살아있으면 다시 활짝꽃이피어나듯, 풍금소리도 살아있는 생 음악이 되어 찬란하 게 다시 피어나곤 한다. 딸내들이 그리우면 손수 풍금으로 동요를 반주하면서 아이들이 부르는 노 래들을 녹음해 두었던 보이스 레 코더를열어보기도한다. 세월이흘러도풍금소리는밤하 늘에 흐르는 달 빛 같이 별 빛 같 이 노심의 길목들을 밝혀주고 있 다. 생의페달을밟을때마다유년의 맑은 모습 그대로 살아가라는 격 려로 성원으로 이어져 왔다. 풍금 소리는 여태껏 생애의 강줄기에 서 기억으로 흔적으로 남아 노년 이라는생의언덕배기에서맴돌고 있다. 오피니언 A8 에드웩슬러작<케이글USA-본사특약> 시사만평 기억과 감사 2026년메모리얼데이 김정자 시인·수필가 행복한아침 풍금 소리가 남긴 것 거리가헐렁하다. 삼차선을빽빽하게메우던차 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텅 빈도로위에는늦은오후의햇 살만길게몸을눕히고있다. 바 람조차 서두르지 않는다. 나뭇 잎몇장이느릿하게몸을뒤척 이고, 신호등 아래 드리운 그림 자들도 한가롭게 늘어져 있다. 마치 동네 전체가“열중쉬어” 자세로 깊은숨을 고르는 것 같 다. 해마다 오월이면 대학촌인 이 곳은 짧고도 뜨거운 몸살을 앓 는다. 졸업식을 맞아 사방에서 몰려든 가족들과 축하객들로 거리는 북적이고, 식당은 긴 대 기 줄로 넘쳐난다. 호텔은 빈방 하나 남지 않고, 꽃집마다 환한 웃음과 향기가 피어난다. 축하 의 계절은 눈부시지만, 그 안에 서 일하는 사람들의 하루는 전 쟁에 가깝다. 주문받고, 음식을 나르고, 테이블을 치우다 보면 하루는 손바닥의 물처럼 빠져 나가버린다. 언제해가떴고언 제저물었는지조차알수없다. 그러다어느순간,축제가끝난 유원지처럼 모든 것이 갑자기 멈춘다. 조금 전까지 사람들로 들끓던 거리에는적막이천천히내려앉 고, 시끌벅적하던 식당 창가에 는햇살만조용히남아의자끝 에 걸터앉아 있다. 직원들의 움 직임도한가롭다. 몸은쉴수있 지만머릿속에서는벌써불안의 바람이 인다. 올여름은 장사가 얼마나 되려나? 학생들이 돌아 오는 7월까지 잘 견뎌 낼 수 있 을까… 뒤늦게 시작한 이민자의 삶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완전히 알아듣지 못한 말을 눈치로 메 우고, 서툰 발음과 어색한 미소 로 손님을 상대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작은 가게를 꾸려 간다 는것은결국내몸을끊임없이 노동의 자리로 밀어 넣는 일이 었다. 내가 쉰다는 것은 누군가 의 손을 빌려야 한다는 뜻이었 고, 그것은 곧 늘어나는 인건비 와 줄어드는 수입을 의미했다. 바쁘면 몸이 힘들었고, 한가하 면 마음이 힘든 날의 연속이었 다. 그래도스스로단단한사람이 라 믿으며 살아왔다. 열심히 일 해서 얻은 경제적인 여유로 남 부럽지않은삶을살때는그모 든평온이나의성품인줄알았 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상황에 서 그동안 모아둔 재산을 모두 잃게되었을때, 비로소나는알 았다. 그동안 나를 지탱하던 것 은‘나’가아니라‘돈’이었다는 것을. 십년넘는세월을가난하 게지냈다. 가난은자주나를수 치스럽게 만들었다. 무너져 내 리는 나를 붙들고 통곡했지만, 그래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어차피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하루를 살아도 즐겁게 살기로 했다. 마음을바꾸니그동안보 이지 않던 세상이 보였다. 돈은 없었지만, 운영하는 식당에 식 자재는 늘 있었다. 맛있는 음식 을만들어직원들과나누고, 이 웃을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내 기 시작했다. 그런 시간 속에서 무거운 먹구름에 눌려 있던 나 의 삶에 점차 따사로운 햇살이 들기 시작했고, 내 안에서‘나’ 가단단하게자라는것또한느 낄수있었다. 덕분에 이제는 보릿고개 같은 여름이 와도 예전처럼 불안감 에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만큼 은단단해진것같다. 가난이불 편하기는 하지만, 그 가난속에 서 넉넉하게 사는 방법을 배운 것은내인생최대의수확이다. 넉넉한하루 허경옥 수필가 윌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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