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6년 5월 29일(금) ~ 6월 4일(목) A8 여행 서울에서 전주까지는 KTX로 약 한 시간 반남짓걸린다. 도시의속도에익숙해진몸 은 호남평야 가까이로 내려갈수록 천천히 리듬을바꾼다. 전주는오래전부터음식과 한옥의도시로알려져왔지만, 최근의전주 는 조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오래된 산 업 공간을 문화로 바꾸고, 지역 안에서 세 계적인 전시를 기획하며 새로운 도시의 감 각을만들어가고있다. 이번여행의목적지는팔복예술공장이다. 과거 카세트테이프를 생산하던 공장을 재 생해 만든 복합 문화 공간이다. 입구로 들 어서는순간높은천장과거친콘크리트벽, 오래된철골구조물이먼저시선을붙든다. 일반적인미술관의매끈함대신산업의시 간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거 친흔적이공간을특별하게만든다. 팔복예 술공장은단순한전시장이아니라, 버려진 공간이어떻게다시도시의문화가될수있 는지를보여주는장소였다. 지방도시에서만나는샤갈 이곳에서 열린 전시는 마르크 샤갈 판화 전이다. 전주라는 지역 도시에서 세계적인 거장의작품을만난다는사실자체가인상 적이다. 최근 지역 문화 공간들은 단순히 ‘지역전시’를넘어, 세계예술과지역관객 을연결하려는시도를이어가고있다. 이번 전시는그런흐름속에서더의미있게다가 왔다. 샤갈은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시적인 화가가운데한사람이다. 그의그림속인 물들은공중을날고,연인들은중력을잊은 듯 떠다닌다. 현실을 재현하기보다 기억과 감정을 환상적으로 풀어낸 화가였다. 이번 전시에서는성서와문학작품을위한판화 연작들이중심을이루고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종이의 질감과 잉크 의 층이 살아 있다. 판화는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압력과 시간의 흔적이 남은 또 하 나의원작이라는사실을새삼느끼게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판화 제작 과정을 이해할수있는공간이다. 석판위에그림을그리고, 잉크를입히고, 압력을통해이미지를종이에옮기는과정 은현대인의빠른이미지소비와는전혀다 른시간의예술처럼보였다. 스마트폰화면 속이미지는쉽게스쳐지나가지만, 판화한 장에는손의압력과기다림이남아있다. 공장 특유의 거친 분위기 속에서 샤갈의 몽환적인 색채를 마주하는 경험도 특별하 다. 산업화의흔적과환상적인예술이충돌 하며 묘한 긴장을 만든다. 서울의 대형 미 술관에서는 마주하기 힘든 경험이다. 전시 장안의사람들도비교적느린속도로작품 앞에머무른다.지역전시특유의여유가공 간전체를감싸고있다. 공장서맥주로이어지는밤 해가 기울 무렵에는 노매딕 브루어리로 향한다.최근전주는음식뿐아니라수제맥 주 문화로도 주목받고 있다. 문을 열고 들 어서자맥아향과사람들의웃음소리가공 간을채운다. 과하게꾸미지않은분위기와 자유로운 대화 속에서 이곳만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특히노매딕브루어리가인상적인이유는 대부분 맥주를 주문 전 조금씩 맛볼 수 있 다는점이다. 손님은여러맥주를천천히비 교하며자신의취향을찾는다. IPA의쌉쌀 함, 사워 맥주의 산미, 스타우트의 묵직함 을하나씩경험하는과정은마치와인테이 스팅과도닮아있었다.한국의수제맥주문 화가이제는단순한유행을넘어하나의취 향문화로자리잡고있음을실감하게된다. 결국가장마음에들었던맥주와함께저 녁식사를주문했다. 짭조름한안주와차가 운맥주가하루의피로를천천히풀어낸다. 창밖으로전주의밤이내려앉고, 여행객과 지역 사람들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뒤섞인 다.서울보다느린도시의밤은오히려오래 머물고싶게만든다. 흥미로운 점은 예전과 달리 수제 맥주 캔 을판매하기시작했다는사실이다. 이제수 제맥주는공간안에서만소비되는문화가 아니라, 지역의감각을담아가져가는하나 의 여행 기념품이 됐다. 몇 개의 캔 맥주를 사들고나오며, 여행방식도달라지고있다 는생각이들었다. 과거의여행이명소를확 인하는일이었다면, 이제는한도시의취향 과감각을경험하는과정에가까워졌다. 지역이스스로문화만드는방식 이번전주여행에서가장인상적이었던것 은‘지역이스스로문화를만들어가는힘’ 이다. 팔복예술공장은산업의기억위에예 술을쌓았고, 노매딕브루어리는지역안에 서새로운음료문화를만들고있었다. 서로 다른 공간처럼 보이지만 둘 모두 전 주만의 속도와 감각을 담고 있다. 이번 전 주는오래된공장의콘크리트냄새와판화 의 잉크, 그리고 맥주 거품의 차가운 감촉 으로오래기억될것같다. ●박윤정(주)민트투어대표 프랑스에서 대학 생활을 하며유럽여행문화를익혔 다.귀국후스스로를위한여 행을즐기겠다는마음으로 2002년민트투어여행사를 차렸다.20여년동안맞춤여 행으로여행객들의 취향에 맞는여행을디자인하고있 다.2021년4월여행책‘나도 한번은트레킹페스티벌크루즈’와이듬해6월‘나도한 번은발트3국발칸반도’를쓰고냈다. ‘공장’서피어난예술과 ‘전주의밤’ 채운맥주 팔복예술공장외부전경. 팔복예술공장내부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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