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6년 6월 5일(금) ~ 6월 11일(목) A8 여행 비오는아침에스프레소온도 아침의맨해튼은아직완전히깨어나지않 은 얼굴이다. 젖은 보도 위로 노란 택시 불 빛이 길게 번지고, 검은 우산을 든 사람들 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 길을 따라작은카페‘컬처에스프레소’의문을 밀고 들어간다. 뉴욕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카페가 있지만, 여행자는 때때로 명성보다 공간의공기와온도로장소를기억하게된 다. 따뜻한 카푸치노 한 잔과 시그니처 초콜 릿칩 쿠키를주문한다. 진한커피향은기 대 이상으로 훌륭하다. 우유 거품 위로 번 지는 에스프레소 향은 지나치게 공격적이 지 않았고, 창 밖의 빗소리와 이상할 만큼 잘 어울렸다. 반면 두툼한 초콜릿 칩 쿠키 는 예상보다 훨씬 달았다. 한입 정도 베어 문 뒤, 결국 손은 다시 카푸치노로 향한다. 여행의만족은언제나완벽함에서오는것 이 아니라, 예상과 어긋나는 순간 더 오래 기억된다. 창 밖으로 보이는 뉴욕의 비는 서울의 비 와조금다르다. 서울의비가풍경을적신다 면, 뉴욕의 비는 도시 전체를 영화의 한 장 면처럼 만든다. 우산 끝에 맺힌 물방울, 젖 은코트의냄새,유리창위로번지는네온의 흔들림. 그런사소한요소들이뉴욕이라는 도시의감정을완성한다. 여행자는결국장 소를기억하는것이아니라,그공간에서자 신이느꼈던감각의결을오래붙들게된다. 나선형건축속흐르는현대미술 택시는 센트럴파크 동쪽을 따라 북쪽으 로 천천히 올라간다. 빗물에 젖은 도로 위 로 뉴욕의 회색 풍경이 흐르고, 그 사이로 유독이질적인형태의건축이모습을드러 낸다.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프랭크 로이드라이트가설계한이공간은뉴욕의 직선적인도시풍경속에서하나의거대한 곡선처럼존재한다. 대부분의맨해튼건물이위로솟아오르는 데 집중한다면, 구겐하임은 인간의 시선을 천천히위로끌어올린다. 건물자체가이미 하나의예술작품이다. 미술관내부의나선 형램프를따라천천히걸으며작품을바라 본다. 이곳에서는 작품을‘관람한다’기보 다공간안을‘흐른다’는표현이더자연스 럽다. 층과층사이를부드럽게이어주는곡 선은관람자의속도마저바꾸어놓는다. 특히 전시 중인‘캐럴 보브’(Carol Bove)의 작업은 인상적이다. 스틸이라는 재료는본래차갑고산업적인물성을가진 다. 그러나 그의 조각은 단순한 금속 구조 물이아니다. 비틀리고휘어진형태안에는 인간의 몸짓 같은 긴장이 숨어 있다. 차갑 게굳은스틸앞에서오히려인간의체온과 감정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구겐하임의 유럽 현대 미술 컬렉션 역시 깊은여운을남긴다. 뉴욕이라는도시가흥 미로운이유는단순히새로운문화를생산 하는데 있지 않다. 세계 곳곳의 예술과 역 사, 기억을끊임없이끌어와다시현재의언 어로재구성한다는점에있다. 시간을붙드는그림들 센트럴파크 동쪽을 따라 걷다 보면 뉴욕 의 속도와는 조금 다른 공기를 품은 공간 이 나타난다. 노이에 갤러리. 독일과 오스 트리아의20세기초예술을중심으로한작 은미술관이다. 원래는단순히카페에서점 심을먹기위해들어가려했다.뉴욕의미술 관카페는때로전시장못지않은문화공간 이되기도한다. 그러나예상은쉽게빗나갔 다.전시장안에서걸음이멈춰섰다. 이곳의작품들은화려하게자신을드러내 지 않는다. 대신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깊 은 농도를 지니고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 빈분리파의작품들은장식성과불안이동 시에공존했다. 황금빛장식은화려하지만, 그안에는시대의균열과인간의불안이조 용히 숨어 있다. 아름다움은 단순한 미적 쾌락이 아니라, 무너져가는 시대를 붙들기 위한마지막우아함처럼느껴졌다. 노이에갤러리는단순한개인컬렉션미술 관이상의의미를가진다. 뉴욕이라는이민 자의도시안에서, 유럽의잃어버린문화와 기억을다시복원하는장소에가깝다. 앞으 로메츠와의협업및확장계획이야기를들 으며, 뉴욕이라는 도시가 왜 늘 새로운 방 식으로문화와사람을연결하려하는지다 시생각하게된다. 랩으로다시태어난역사 오후가깊어질수록타임스스퀘어의불빛 은더선명해진다. 거대한광고판과관광객, 경찰차의사이렌과거리의음악이서로뒤 섞이며도시전체를하나의공연장처럼만 든다. 그 중심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해 밀턴’을 관람했다. 이 작품은 단순한 공연 이아니라, 미국역사를현대의언어로다시 번역한문화적사건에가깝다.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의 삶을다루지만, 무대위에너지는전통적인 역사극보다거리의힙합공연에더가까웠 다. 빠른 랩과 리듬, 배우들의 폭발적인 호 흡은브로드웨이뮤지컬의문법자체를새 롭게뒤집는다. 더인상적인것은과거를바 라보는방식이다. 역사속인물을박제된위 인으로남겨두지않고, 지금도살아움직이 는인간으로끌어낸다. 이민자였던 해밀턴의 삶은 오늘날 뉴욕 이라는 도시의 정체성과도 자연스럽게 겹 쳐진다. 세계각국에서온사람들이각자의 언어와 꿈을 품고 살아가는 도시. 그래서 이 작품이 단순한 미국 역사극이 아니라, 뉴욕이라는 도시 자체를 설명하는 거대한 은유처럼느껴졌다. 공연이끝난뒤극장을 나서자 젖은 브로드웨이의 간판들은 흐릿 하게번지고있었다. 사람들은여전히빠른 걸음으로어딘가를향해이동한다. 뉴욕의 밤은좀처럼멈추지않는다. ●박윤정(주)민트투어대표 프랑스에서 대학 생활을 하며유럽여행문화를익혔 다.귀국후스스로를위한여 행을즐기겠다는마음으로 2002년민트투어여행사를 차렸다.20여년동안맞춤여 행으로 여행객들의취향에 맞는여행을디자인하고있 다.2021년4월여행책‘나도 한번은트레킹페스티벌크루즈’와이듬해6월‘나도한 번은발트3국발칸반도’를쓰고냈다. ‘빗속의뉴욕’서예술과리듬사이를걷다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내부. 뉴욕의 하루가 빗소리와 함께 시작된 다. 맨해튼의 회색 건물들은 맑은 날보다 오히려 젖은 날 더 또렷한 표정을 드러낸 다. 도시의 윤곽은 흐려지는데, 사람들의 움직임은 더 선명해진다. 뉴욕은 그런 도 시다. 화려함보다 리듬으로 기억되는 곳. 수많은 문화와 자본, 예술과 욕망이 서로 부딪히며 끊임없이 새로운 표정을 만들 어내는거대한무대다. 그러나그낯선리 듬 속으로 한 걸음 들어서는 순간, 어느 새자신만의뉴욕을발견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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