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6년 6월 26일(금) ~ 7월 2일(목) A8 여행 하동은늘봄의이름으로먼저불린다. 매 년5월이면섬진강과지리산자락에는연둣 빛 새순이 돋고,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작은 산골 마을로 모여든다. 그러나 축 제가끝난뒤의하동은오히려더깊은표정 을보여준다. 사람들의발걸음이뜸해진자 리에서차나무는다시고요를되찾고, 산과 강은본래의호흡으로돌아간다. 1200년의차향이머문땅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차의 기억이 깃든곳. 하동은우리나라에서유일하게야 생차시배지의전통을간직한지역이다. 신 라 흥덕왕 3년, 당나라에서 돌아온 대렴이 차 씨앗을 가져와 화개동천에 심었다는 기 록은‘삼국사기’에 남아 있다. 1200년이 넘는세월동안이곳의차는단순한농산물 을 넘어 산과 강, 그리고 사람의 삶이 함께 빚어낸문화가됐다. 섬진강을 따라 펼쳐지는 풍경은 서두르 지않는다. 강은유유히흐르고, 지리산능 선에는옅은안개가걸려있다. 초록빛물결 처럼번지는차밭은여름으로향하는계절 의속도를보여준다. 하동에는도시처럼시 선을압도하는화려함은없다.대신오래바 라볼수록깊이가드러나는수묵화같은아 름다움이있다. 축제가끝난뒤만난천년차마을 첫 방문지는 붓당골이다. 산자락 아래 자 리한이곳은이름그대로붓끝으로그려낸 한 폭의 산수화 같다. 고즈넉한 한옥과 낮 은 담장, 조용한 마당에 놓인 다구들이 마 음의속도를천천히늦춘다. 무엇보다인상 적인 것은 이 공간을 지키는 부녀(父女)의 모습이다. 아버지는찻잎을덖으며차가완 성되는과정을설명한다. 손끝으로잎을만 지고향을맡으며불의세기를조절하는모 습에는오랜세월축적된장인의감각이배 어 있다.“차는 기다림의 산물입니다. 서두 르면떫어지고, 늦으면향을잃지요.”그말 은결국사람의삶을닮아있었다. 옆에서 딸은 차를 위한 디저트를 만들며 방문객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하동차를 소개한다. 전통을 지키는 아버지와 새로운 언어로해석하는딸.서로다른시간을살아 가는듯하지만두사람은같은방향을바라 보고있었다. 전통은박제된유산이아니라 현재와 만나며 끊임없이 새로워질 때 비로 소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깨닫게 된다. 차와예술만나는공간 ‘찻잎마술’ 관아수제차와 찻잎마술에서는 또 다른 하동의얼굴을만난다. 이름부터호기심을 자극하는찻잎마술의문을열자전통미술 품과 다구, 나무의 결이 살아 있는 가구들 이조화롭게어우러진다. 오래된목재의질 감은 다도의 시간과 닮아 있고, 벽에 걸린 작품들은눈에보이지않는차향을시각적 으로표현하는듯하다. 마침강의가한창이 었다. 수강생들은 한 잔의 차를 대하는 법 을배우기위해진지한표정으로메모를하 고있었다. 그들의태도는차가단순한음료 가아니라마음을다스리는수행이자삶의 태도임을말해주고있었다. 생각해보면차문화는동아시아정신사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중국에서는 선(禪)과 결합했고, 일본에서는다도라는의례로발 전했으며, 한국에서는자연과더불어살아 가는선비정신으로이어졌다. 초의선사역 시차를통해욕망을비우고자연과하나되 는경지를이야기했다.하동의차문화는바 로그긴정신사의흐름위에놓여있다. 지리산자락의초록물결 퇴마루차실로 향하는 길에서 또 다른 풍 경이 펼쳐진다. 차실 앞 계단식 차밭은 그 자체로한점의풍경화였다. 초록의물결이 지리산자락을따라흘러가고, 바람이스칠 때마다 찻잎은 잔잔한 파도처럼 흔들린다. 오랫동안그풍경을바라보았다. 차나무는 결코서두르지않는다. 해마다같은자리에 서새순을틔우고사람은가장어린잎을조 심스럽게손으로채취한다. 자연과 인간이 오랜 시간 협력하며 만들 어낸풍경. 그래서차밭은단순한농경지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 경관이 된다. 하동의 차밭이특별한이유도여기에있다. 차나무 와섬진강, 지리산과화개장터, 사찰과마을 이하나의생태계를이루며공존한다. 이곳 에서차는상품이아니라지역의기억이자 정체성이다. 차향이스민길상상하다 천연다향길이라는간판을만난것은우연 이었다. 그러나그이름만으로도언젠가시 간을내어천천히걸어보고싶다는생각이 들었다.좋은길은걷기전에먼저상상하게 만든다. 차향이 스며든 길, 바람과 나무가 동행하는 길, 걸음을 늦추게 만드는 길. 하 동에는그런길이많다. 차의여운마시는시간 대청마루의콩국수로초여름의더위를식 힌다. 고소한 콩물 한 숟가락에는 어느새 다가온계절의풍경이담겨있었다. 후식처 럼들른쌍계명차카페에서는천년차문화 의뿌리가다시살아난다. 차아이스크림을 맛보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잠시 숨 을 고른다. 창 밖으로는 짙은 녹음이 번지 고, 은은한향이공간을가득채운다. 차는 목을축이는음료가아니라시간을마시는 행위라는사실을새삼깨닫는다. 높은곳서바라본하동 하동플라이웨이케이블카가천천히상승 하자섬진강과차밭, 마을과들판이한눈에 펼쳐졌다. 높은곳에서내려다본하동은거 대한풍경화였다. 굽이치는강과층층이이 어진 초록빛 밭, 그 뒤를 감싸 안은 지리산 능선이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 었다.그풍경앞에서는인간이자연을소유 하는것이아니라잠시빌려살아가고있다 는사실을깨닫게된다. 하동미라클서만난저녁의고요 배를 타고 들어간 하동 미라클은 세상과 조금떨어져있는작은섬이었다. 선착장에 내리자김태수작가의작품이가장먼저여 행자를맞이한다. 섬길을천천히걸었다. 붉 게 물든 노을이 강 위에 내려앉고, 바람과 새소리만이오후의적막을채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오히려 가장 충만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문득 이 런 생각이 들었다. 차는 결국 자연의 시간 을배우는일인지도모른다.빨리자라지않 고, 서두르지 않으며, 제때 향을 내어주는 것. 하동의 차밭과 강, 사람들은 모두 같은 이야기를하고있었다. ●박윤정(주)민트투어대표 프랑스에서 대학 생활을 하며유럽여행문화를익혔 다.귀국후스스로를위한여 행을즐기겠다는마음으로 2002년민트투어여행사를 차렸다.20여년동안맞춤여 행으로여행객들의 취향에 맞는여행을디자인하고있 다.2021년4월여행책‘나도 한번은트레킹페스티벌크루즈’와이듬해6월‘나도한 번은발트3국발칸반도’를쓰고냈다. 차실앞계단식차밭. 차향이머무는시간, 하동을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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