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6년 9월 4일(금) ~ 9월 10일(목) 카페‘물러남’에서보는계곡풍경. A8 여행 얼굴앞서걸음멈추다 나눔의 집에 도착한다. 산으로 둘러싸인 공간은고요하다. 건물입구의흉상앞에서 걸음이 자연스레 느려진다. 얼굴과 주름, 몸의 선에 긴 세월이 배어 있다. 알고 있던 역사가한사람의얼굴을만나는순간,지식 은 감정으로 바뀐다. 이곳의 일본군‘위안 부’역사관은 피해자들의 삶과 증언을 기 록하고기억하는공간이다. 한때여러피해 할머니가이곳에서함께생활했다. 밥을먹 고꽃을가꾸며찾아오는사람들에게자신 의경험을들려줬다. 전시관안으로들어간다. 사진한장앞에 서고, 증언몇줄을읽고다시걷는다. 관람 의속도가저절로느려진다. 전쟁이라는거 대한 단어 뒤에는 너무도 구체적인 개인의 시간이 놓여 있다. 어린 나이에 끌려간 사 람, 돌아와서도 오랫동안 말하지 못한 사 람, 마침내자신의경험을세상에증언하기 로한사람. 역사는숫자로정리되지만고통 은한사람의몸과기억속에남는다. 나눔의집에서마지막까지생활했던강일 출 할머니도 올해 봄 세상을 떠났다. 이제 이곳에거주하는피해할머니는없다. 그래 서 전시관을 나서는 마음이 더 무겁다. 증 언할사람이사라진뒤누가기억을이어갈 것인가. 기억은누군가찾아오고바라보고 들으며다음사람에게전할때살아남는다. 밖으로나오니여름햇빛이눈부시다. 세상 은평온하게흘러간다. 그평범한햇살때문 에오히려마음이오래먹먹하다. 책읽던사람들이역사만들다 차는 다시 산속으로 향한다. 천진암으로 들어가는길에는계곡이따라온다. 나무사 이로물빛이반짝이고매미소리가숲을채 운다. 차에서내리자한여름의뜨거운공기 가 몸을 감싼다. 천진암은 한국 천주교 초 기 역사에서 특별한 장소다. 18세기 후반 권철신과 이벽을 비롯한 젊은 지식인들이 이일대에서서학을공부하고토론했던강 학의전통과연결된다. 이 이야기가 흥미롭다. 조선의 젊은 지식 인들은책을통해서양의학문과천주교사 상을 접했다. 읽고 묻고 토론했다. 새로운 지식에대한호기심은차츰신앙으로깊어 졌다. 생각이 믿음이 되고, 믿음이 삶의 선 택으로이어졌다. 더운성지의길을천천히 걷는다. 등에 땀이 밴다. 나무 그늘을 만나 면잠시걸음을늦춘다. 지금은잘닦인길 이지만 200여 년 전에는 깊은 산골이었을 것이다. 젊은 선비들이 산길을 넘어 모여 책을 펼 치고인간과세계, 삶과죽음에대해이야기 를나눴을모습을그려본다. 종교의시작도 어쩌면이처럼소박했을것이다. 거대한성 당보다먼저몇사람이둘러앉아던진질문 이 있었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믿을것인가. 좋은질문은시대를넘 어오래살아남는다. 천진암 주변 풍경도 흥미롭다. 한국 천주 교의오래된기억을품은산과계곡주변에 는개신교수련원과기도원, 연수시설도자 리한다. 여름이면 사람들의 기도와 찬송, 계곡물소리가한공간에섞인다.서로다른 믿음이 같은 산과 물을 나누는 모습이다. 산은사람의구분보다넓다. 계곡물도경계 를 모르고 흐른다. 퇴촌의 자연은 저마다 다른방식으로찾아온사람들의믿음과쉼 을넉넉히품는다. 계곡서만난 ‘물러남’ 성지를내려오니몸이제법지쳐있다. 마 지막으로찾은곳은카페‘물러남’이다. 퇴 촌이라는지명을우리말로풀어낸듯한이 름이정겹다.계곡가까이에앉는다.차가운 커피잔을 손에 쥐자 손끝부터 서늘해진다. 얼음이잔에부딪히는소리와계곡물흐르 는소리가겹친다. 뜨거웠던하루가여기서 천천히식는다. 물러남에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이 곳은 커피를 마시는 공간을 넘어 뮤지컬과 문화예술활동,다음세대를위한교육과이 어져있다. 인근에서는기독교문화예술공 동체의공연과뮤지컬교육, 대안적인배움 의시도도계속된다. 생각해보니오늘의세 장소가 묘하게 연결된다. 나눔의 집에서는 기억을 만났다. 천진암에서는 믿음의 시작 을생각했다. 물러남에서는오늘을살아가 는 사람들의 쉼과 꿈을 본다. 모두 사람이 남기고이어가는이야기다. 퇴촌은산좋고물좋은서울근교의전원 마을이라는 설명보다 조금 깊다. 근현대사 의 아픈 기억이 있고, 한국 천주교의 시작 과연결된산길이있으며,계곡을따라개신 교공동체의공간들이자리한다. 그사이에 카페와식당, 전원생활의풍경이스며든다. 오래된믿음과오늘의일상이한계곡안에 서자연스럽게겹친다. 커피를한모금마시며물을바라본다. 계 곡물은바위를만나면돌아가고, 잠시고였 다가 다시 흐른다. 하루 종일 마음에 남았 던물러남이라는단어가그제야조금선명 해진다. 한걸음물러서야전체풍경이보일 때가있다.속도를늦춰야사람의얼굴이보 이고, 잠시멈춰야오래전누군가의목소리 도 들린다. 기억하는 일, 믿는 일, 쉬어가는 일. 어쩌면모두인간이시간을건너는방법 일것이다. ●박윤정(주)민트투어대표 프랑스에서 대학 생활을 하며유럽여행문화를익혔 다.귀국후스스로를위한여 행을즐기겠다는마음으로 2002년민트투어여행사를 차렸다.20여년동안맞춤여 행으로여행객들의 취향에 맞는여행을디자인하고있 다.2021년4월여행책‘나도 한번은트레킹페스티벌크루즈’와이듬해6월‘나도한 번은발트3국발칸반도’를쓰고냈다. 천진암성지. 퇴촌에선한걸음물러나 오래바라본다 서울을벗어나팔당쪽으로달리자풍경의속도가 느려진다. 건물은뜸해지고산의능선이가까워진 다. 경기도광주시퇴촌. 팔당호와경안천수계가가 까운이곳은산과계곡사이로마을이이어진다. 퇴촌이라는이름부터마음을끈다. 조선개국공신 조영무가벼슬에서물러나이곳에서여생을보냈다 는이야기가전해진다. 물러날퇴(退)를품은마을. 하루를보내고나면물러남은세상에서멀어지는말 보다한걸음뒤에서지나온시간을바라보는말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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