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6년 9월 11일 (금요일) 이들은 저마다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 땅에서 삶을 일구던 평 범한 이민자와 그자녀들이었다.월 가의금융회사에서앞날을펼쳐가던 20대청년,결혼을앞둔30세여성,어 린자녀를둔가장,미국정부와방위 산업체에서일하던엔지니어,박사과 정을밟던연구자도있었다.어떤이는 평소와다름없이출근했다가,어떤이 는단지회의에참석하기위해세계무 역센터를찾았다가, 또어떤이는가 족을만나기위해LA행비행기에올 랐다가영영돌아오지못했다. 25년 이라는세월은당시두살이던아이를 20대후반의성인으로만들만큼긴 시간이다. 그날아침집을나서며건넨마지막 인사와전화통화, 끝내돌아오지못 한가족을기다리던시간이 여전히 기억속에살아있다. ■월가청년의꿈,장학사업으로 희생자가운데가장젊은한인중 한 명이었던 김재훈(미국명 앤드 류)씨는불과 26세였다. 뉴저지리 오니아에살던김씨는컬럼비아대 를 졸업하고 금융회사 프레드 앨 거에서리서치애널리스트로일하 고 있었다. CFA 시험에도 합격하 며금융전문가로서미래를준비하 고 있었다. 그는 피아노와 클라리 넷,기타를연주했고학창시절에는 마칭밴드와 재즈밴드, 오케스트 라에서 활동했다. 교회에서는 청 소년들을돌봤다. 그가떠난뒤가족은앤드류재훈 김메모리얼재단을설립했다.본보 가 9·11 20주년이던지난 2021년 당시부친김평겸씨를인터뷰했을 때까지 재단을 통해 장학금을 받 은 학생은 200명이 넘었다. 스물 여섯에멈춘한 청년의삶이다 른 젊은이들의 미래를 열어주 는 장학사업으 로이어진것이 다. 육성아(미국 명 크리스티나) 씨는 25세였다. 한국에서 태어 나가족과함께 오하이오주로 이민온그는미시간대를졸업한뒤캔 터 피츠제럴드 인사부에서 근무했 다.2001년9월11일아침그는북타워 104층에있었다.이후가족과지인들 은그의이름을딴크리스티나성아 육메모리얼장학금재단을설립해 젊은이들을지원했다. ■LA가족만나러오다가 남가주한인들에게특히가슴아 픈사연은수김핸슨씨가족이다. 당시 35세였던핸슨씨는 UC 버클 리를졸업하고보스턴대에서석사 학위를 받은 뒤 박사과정을 밟으 며미생물·면역관련연구를하고 있었다. 9월11일그는남편피터핸 슨, 두살배기딸과함께보스턴에 서 LA로 향하는 유나이티드항공 175편에 탑승했다. LA의 가족을 만나러 오는 길이었다. 하지만 비 행기는 LA에도착하지못했다. 테 러범들에게 납치된 UA 175편은 이날 오전 9시3분 세계무역센터 남타워를 들이받았다. 핸슨씨 부 부와 딸까지 모두 희생됐다. 세 식 구가함께찍은가족사진은지금도 9·11메모리얼에보존돼있다. LA 에서이들을기다렸을가족들에게 9월11일은 25년이지난지금도끝 나지않은기다림으로남아있다. ■새직장이틀째맞은비극 로렌스돈김씨는 31세였다. 피츠 버그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으 로정보기술분야에서경력을쌓아 마시&맥레넌의 정보기술 부문 시 니어 매니저로 자리를 옮겼다. 그 러나2001년9월11일은새직장에 출근한 지 불과 이틀째 되는 날이 었다. 그는이날오전 7시30분에서 8시 사이 세계무역센터 북타워에 도착한것으로주차기록에남아있 다. 잠시 뒤 북타워는 납치된 아메 리칸항공11편의공격을받았다. 김씨는 독학으로 독일어를 배워 프로이트와 하이데거, 괴테의 저 작을 원문으로 읽을 정도로 지적 호기심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셀 린 디온의 음악을 좋아하고 고향 팀피츠버그스틸러스의열렬한팬 이었던평범한젊은미국인이었다. 이제 막 새로운 직장에서 펼쳐질 그의 미래는 두 번째 출근날 아침 멈춰버렸다. ■결혼앞둔30세여성 조경희(미국명 케이시)씨는 당시 30세였다. 1971년 서울에서 태어 난그는뉴저지클리프턴에서홀어머 니와언니,어린조카와함께살고있 었다.이듬해인2002년에는사랑하는 사람과결혼할예정이었다.그역시마 시&맥레넌에입사한지불과두달정 도밖에되지않은신입직원이었다. 9 월11일아침조씨는세계무역센터북 타워99층에있었다. 25년이흐른지 금도뉴욕 9·11 메모리얼에는그의 이름이새겨져있다.추모일이면이름 곁에는꽃과사진이놓인다. ■임시직에서월가부사장까지 추지연(미국명 파멜라)씨의 삶은 한인이민자의아메리칸드림을그 대로 보여준다. 1970년 한국에서 태어난 추씨는 두 살 때 부모를 따 라미국으로이민했다.뉴욕주립대 버팔로를졸업한뒤세계적금융회 사캔터피츠제럴드에임시직으로 입사했다.능력을인정받으며한단 계씩 올라가 약 10년 만에 포트폴 리오 트레이딩 그룹의 부사장까지 승진했다.당시나이31세였다. ■두딸남긴아버지 캔터 피츠제럴드에서 일했던 강 준구씨는 당시 34세였다. 시스템 분야에서 일했던 그는 2001년 아 내와네살, 두살등어린두딸을 둔 가장이었다. 강씨와 아내의 사 랑을 상징하는 특별한 사연도 남 아 있다. 그는 아내에게 청혼하면 서 그녀를 그리워할 때마다 하나 씩 접었다는 종이학 1,000마리를 선물했다. 감기에서 회복 중이던 그는9월11일아침출근했고,그것 이 가족과의 마지막이 됐다. 그러 나 그의 이름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후 가족과 지인들은 도 미니카공화국에 강준구 메모리얼 스쿨을 세워 그의 이름과 나눔의 정신을이어갔다. ■세월은흘러도이름은남아 2001년 9월11일 이후 세계는 크 게 달라졌다. 그날 태어나지도 않 았던세대가이제성인이됐고, 당 시어린아이였던희생자들의자녀 들도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의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다. 뉴욕의 스카이라인에는다시초고층빌딩 이솟았고세계무역센터가있던자 리에는 거대한 추모 연못이 만들 어졌다. 그러나 그곳에 새겨진 이 름들은25년전그대로다. 그이름 하나하나 뒤에는 이루지 못한 꿈 이있고, 돌아오지못한부모와자 녀, 배우자를 기다렸던 가족이 있 다. 그리고 일부 희생자의 이름은 장학재단과 학교, 추모사업으로 이어지며새로운세대의삶속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다. 25년이라는 세월은 상처를 조금 무디게 할 수 는 있어도 그날을 없었던 일로 만 들수는없다. 그리고 9·11을직접 경험하지않은세대가늘어날수록 그날무슨일이있었는지, 누가희 생됐는지,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 는지를기록하고전하는일은더욱 중요해지고있다. 사람은떠났지만이름은남았다. 이름을 기억하는 한, 그들이 남긴 삶과 레거시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25년이 지난 오늘, 우리가 다시 9·11 한인 희생자들의 이름 을부르는이유다. 특집 A4 미역사상최악비극의그날…25년뒤다시부르는이름 ■9·11참사에스러진한인희생자들 “25년의세월도그비통한아픔을씻어내지는못하지만, 이름을기억하는것만으로 도그들은우리의마음속에영원히남을것입니다.” 미합중국역사상최악의비극으로기록된 2001년 9.11 테러. 미국본토가가공할항 공기납치자살테러범들에의해무참히공격당해 3,000명가까운인명이희생된전 대미문의 9.11 테러가 11일로발발한지 25주년이된다. 25년전그날미국의수퍼파 워의상징이던뉴욕세계무역센터쌍둥이건물이무너져내리는장면은미국인들을 비롯한전세계인의뇌리에화인처럼각인돼엄청난트라우마로남았다. 당시무고하 게스러져간총2,997명의희생자들중에는뉴욕과워싱턴등에서활동하던한인20 여명도포함됐다. 그로부터사반세기가흐른지금, 급격하게변한미국사회는여전히 격변의시대를지나고있지만, 다시불러보는9.11한인희생자들의이름들은25년전 의충격과슬픔을고스란히간직하고있다. 26세 청년부터 두 살 딸 둔 아버지까지 남겨진 가족들 사반세기의 세월 견뎌 한인 젊은이들의 꿈 속속‘장학사업’으로 “기억하는 한 그들의 레거시는 영원히” 9.1125주년을맞아뉴욕맨해튼그라운드제로의희생자추모동판에꽃이놓여있다.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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