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6년 10월 16일(금) ~ 10월 22일(목) A9 여행 타이중그린뮤지엄브러리. 거대한지붕아래,도시와관계맺는미술관 미술관에다가가면작품보다먼저건축이 시선을붙잡는다. 사진속건물은거대한금 속 격자가 지붕과 외벽을 연속적으로 감싸 고있다. 삼각형모듈이촘촘히반복되다가 어느순간느슨해지고, 지붕은땅에서솟아 올랐다가 다시 낮아지는 하나의 지형처럼 보인다. 직선으로 반듯하게 세운 기념비적 문화시설과는상당히다른인상이다. 특히 위층에서 바라보면 건축의 성격이 더분명해진다.은빛외피아래로공원과산 책로, 나무들이이어지고사람들은건물과 정원사이를천천히오간다. 미술관이작품 을보관하는상자가아니라도시의풍경을 끌어들이는 커다란 그늘처럼 느껴진다. 미 술관의 경험이전시장문앞에서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을 바라보고, 걷고, 주변 풍경과관계를맺는순간부터시작되는셈 이다. 전시를 본 뒤 카페에 앉았다. 이곳에서는 미술관의 긴장감이 자연스럽게 풀렸다. 유 리창너머로녹지가보이고, 스테인리스테 이블과 의자, 은색 카운터 위로 주황빛 조 명이길게내려앉아있다. 차갑고현대적인 금속의질감에따뜻한빛하나가들어오자 공간의 표정도 달라진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나눈다. 좋은 문화 시설에는 이런‘아무것 도하지않는시간’이필요하다. 작품앞에 서집중했던시선을잠시풀어놓을장소가 있을때미술관은관광지가아니라하루의 일부가된다. 두바퀴로읽는근대의시간 이어 찾은 자전거 박물관에 들어서자 하 루의 속도도 한층 느려진다. 둥글게 휘어 진전시장을따라초기자전거들이시간순 으로 놓여 있다. 거대한 앞바퀴를 가진 자 전거, 지금의형태와는사뭇다른프레임과 안장, 가느다란 금속 바퀴를 보고 있으면 자전거가 처음부터 완성된 물건이 아니었 다는사실을새삼깨닫는다.특히1810년대 의초기자전거를재현한전시품앞에서는 자전거가 단순한 이동수단 이상의 발명품 이었다는생각이들었다. 자동차가 등장하기 전, 두 바퀴는 인간의 이동반경과속도를넓혔다. 걷는사람과기 차사이에개인이스스로움직일수있는새 로운속도가생긴것이다. 이후자전거는출 퇴근 수단이 되고 스포츠가 됐으며, 대량 생산산업과도시문화의일부가됐다. 그래 서자전거의역사를보는일은결국근대인 의몸과도시의변화를읽는일이기도했다. 페달 하나, 체인 하나, 바퀴의 크기 하나가 달라질때마다인간이도시를경험하는방 식도조금씩변했다. 미술관에서건축을통 해현재의타이중을봤다면, 이곳에서는전 시품을통해근대라는시간을바라보게된 다. 오래된건물서맛보는현재의시간 저녁무렵, 타이중중구로향한다. 이지역 의매력은새건물보다오래된건물에서더 선명하게드러난다. 대표적인사례가‘궁원 안과’와‘제4신용합작소’다. 이름만 들으 면 여행객이 찾아갈 곳 같지 않다. 안과와 금융기관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 건물을다시활용한이공간들은지금타이 중의대표적인디저트명소다. 궁원안과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안과의 사미야하라다케오가운영했던안과건물 에서이름을가져왔다고한다. 훗날이오래 된 건물이 식품·디저트 공간으로 되살아 나면서 과거의 이름 자체가 새로운 브랜드 가 됐다. 제4신용합작소 역시 과거 금융기 관이던건물을활용한공간이다. 오래된건 물의기억을없애는대신이름과흔적을남 기고 그 안에 아이스크림과 차, 과자 같은 현대의소비문화를채워넣었다. 흥미로운 점은 과거의 흔적을 지우지 않 은 채 현재의 소비 경험을 더했다는 데 있 다. 타이중의도시재생은역사를박제해놓 고감상하라고요구하기보다, 사람들이먹 고 사고 머무는 행위 속으로 밀어 넣는다. 오래된 안과에서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옛 금융기관에서 디저트를 먹는 경험에는 약 간의유머가흐른다. 과거는엄숙한문화재 로멈추지않고현재의취향과소비속에서 다시쓰이고있는것이다. 저녁 식탁에서도 여러 문화가 겹쳐진 타 이중의 얼굴을 만난다. 대만의 중국 음식 은하나의‘중식’으로묶기어렵다. 복건(푸 젠)과광동(광둥)을비롯한중국남부의음 식문화와대만고유의식재료와조리법, 일 본통치기의영향이오랜시간겹쳐졌다. 볶 고 찌고 삶는 익숙한 중국 요리의 문법 속 에서도간은비교적섬세하고, 채소와해산 물, 돼지고기의질감을살리는음식들이자 연스럽게식탁을채운다. 여러접시를가운 데놓고조금씩나눠먹는방식까지포함하 면저녁식사는음식이라기보다사람사이 의시간을만드는자리에가까웠다. 하루를 되짚어보니 미술관과 카페, 자전 거 박물관, 궁원안과와 제4신용합작소는 전혀동떨어진장소가아닌듯하다.거대한 현대 건축도, 19세기의 자전거도, 오래된 안과와금융기관도결국같은질문을던지 고있었다. 과거를 남긴다는 것은 무엇일까? 보존하 되멈춰세우지않고, 고쳐쓰되흔적을완 전히 지우지 않는다. 미술관에서는 사람들 이커피를마시고, 오래된건물에서는아이 스크림을먹는다. 그렇게 역사는 기념관이 아니라 일상 가 까이에머문다. 어쩌면도시의기억을오래 남기는가장좋은방법은그것을전시장안 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계속 그 안을 걷고 먹고 이야기하도록 만드는 일인 지도모르겠다. ●박윤정(주)민트투어대표 프랑스에서 대학 생활을 하며유럽여행문화를익혔 다.귀국후스스로를위한여 행을즐기겠다는마음으로 2002년민트투어여행사를 차렸다.20여년동안맞춤여 행으로여행객들의 취향에 맞는여행을디자인하고있 다.2021년4월여행책‘나도 한번은트레킹페스티벌크루즈’와이듬해6월‘나도한 번은발트3국발칸반도’를쓰고냈다. 오래된시간이일상이되는도시 ‘타이중’ 타이중에서인상깊었던것은오래된것을지우지않고새로운생활속에끌어들이는도시의방식이었다. 미술관에서카페를 거쳐자전거박물관으로이어진하루는서로다른장소를방문한일정처럼보였지만, 돌아보니하나의질문으로이어져있었 다. 도시는과거를어떻게오늘의일상으로바꾸는가? 타이중 자전거박물관. 궁원안과미야하라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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