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6년 4월 3일(금) ~ 4월 9일(목) A9 여행 드러내지않는건축…깊어지는시간 언양성당앞에섰을때, 가장먼저느껴지 는것은‘조용함’이다. 화려한장식도, 과시 적인 규모도 없다. 대신 붉은 벽돌과 회색 석재가나란히이어지며단단한시간을쌓 고 있다. 이 건물은 전형적인 서유럽 고딕 성당과는다르다. 첨탑은 분명 하늘을 향하고 있지만, 전체 구조는낮고안정적이다. 이는한국의기후 와 현실, 그리고 당시 지역 공동체의 조건 속에서변형된‘한국적고딕’이라할수있 다. 아치형창문은빛을안으로끌어들이되 과장하지 않는다. 빛은 쏟아지지 않고, 스 며든다. 성당내부로들어서면그이유를이해하게 된다. 스테인드글라스는강렬한색대신은 은한색조를선택했고,빛은바닥에닿기전 에한번더부드러워진다. 그빛아래앉으 면,자연스럽게말이줄어든다.이곳은설명 하는공간이아니라, 스스로생각하게만드 는공간이다. 성인들의자리…침묵이말하는것 성당 한편에는 순교 성인들의 흔적이 남 아있다. 특히김대건안드레아신부의초상 앞에 서면, 시간의 밀도가 달라진다. 그의 얼굴은평온하다. 그러나그평온함은아무 일도없었던사람의표정이아니다. 이미모 든것을알고선택한사람의표정이다. 밖으로나서면청동흉상이하나서있다. 과장되지 않은 표정, 힘을 주지 않은 어깨, 그러나 쉽게 눈을 떼기 어렵다. 그 조각은 ‘고통’을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견딤’을 보여준다. 그리고그차이가이곳의공기를 만든다. 울주천주교순례길 걷는다는것의의미 성당 앞 안내판에는 순례길이 단순하게 표시돼 있다. 그러나 그 선 하나하나에는 200년의시간이겹쳐있다. 박해를피해산 으로숨어들었던신자들, 신앙을지키기위 해 이름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공동체, 그 리고다시마을로내려와조용히삶을이어 간사람들. 이길은단순한이동경로가아 니라, 생존의 흔적이다. 나는 잠시 그 길을 따라걸었다. 논과밭사이를지나고, 낮은담장을스치 며,멀리서들려오는자동차소리와함께걷 는다. 완전히고요하지도, 완전히번잡하지 도않은이풍경. 바로그‘사이’가이길의 본질이다. 순례는 특별한 장소에서 완성되 는 것이 아니다. 속도를 바꾸는 순간, 이미 시작된다. ‘언양읍성’서본신앙이후의삶 성당을 떠나 조금 이동하면 언양읍성에 닿는다. 돌로쌓은성벽은조선시대의방어 시설이었지만, 지금은 시민들의 일상 속으 로 들어와 있다. 아이들이 뛰고, 어른들은 천천히 걷는다. 누군가는 아무 목적 없이 벤치에앉아시간을보낸다. 순례의끝에서 만난 이 풍경은 묘하게도 더 깊다. 신앙의 길이결국삶으로이어진다는사실을, 이곳 이보여준다. 여정의 마지막은 식당이다. 문을 열고 들 어가앉으면,숯불위에얇게펼쳐진고기가 금세 익어간다. 언양불고기는 화려하지 않 다. 양념은 절제돼 있고, 고기의 결이 그대 로살아있다. 한점을입에넣으면, 짭짤함 보다담백함이먼저온다. 씹을수록깊어지 는맛. 그순간문득깨닫는다. 오늘의여정 이특별했던이유는,어디를갔기때문이아 니라어떻게걸었기때문이라는것을…. 순 례는 멀리 있지 않다. 단지 속도를 늦추는 선택에서시작된다. 울주, 언양의길위에서 그사실은설명이아니라경험으로남는다. ●박윤정(주)민트투어대표 프랑스에서 대학 생활을 하며유럽여행문화를익혔 다.귀국후스스로를위한여 행을즐기겠다는마음으로 2002년민트투어여행사를 차렸다.20여년동안맞춤여 행으로 여행객들의취향에 맞는여행을디자인하고있 다.2021년4월여행책‘나도 한번은트레킹페스티벌크루즈’와이듬해6월‘나도한 번은발트3국발칸반도’를쓰고냈다. 언양 ‘신앙의길’에서시간을걷다 언양성당내부전경. 관광이풍경을소비하는일이라면, 순례는시간을통과하는행위에가깝다. 머무는것이아니라, 지나가는것. 그러나그‘지 나감’속에서인간은가장오래된질문과마주한다. 어디에서왔고, 어디로가는가. 울산울주로향하는길위에서, 그질문은 생각보다조용히시작된다. 서울에서남하하는도로는빠르지만, 언양에가까워질수록풍경은낮아지고속도는자연스럽게 느려진다. 산은높지않고, 들은넓으며, 공기는맑다. 이곳은격렬한역사위에놓여있지만, 그표정은놀랍도록평온하다. ▶울주천주교순례길 : 언양성당(국가등록문화재) 중심으로박 해시대교우촌과순교지를연결한3개코스(총8.1㎞등)로조성. -1코스:박해를피해형성된교우촌을중심으로구성. -2코스:언양성당~길천~순정~살티공소~살티순교성지. -3코스:배내골~죽림굴(십자가도보성지순례) ▶울주언양읍성:울산광역시울주군언양읍에있는조선시대 읍성. 1966년12월27일대한민국사적제153호로지정. ▶언양금화불고기(울산울주군언양읍성리길1) : 전통불고기 맛집으로, 신선한고기와정갈한밑반찬이장점. 넓은주차장이 용편리.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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